6·25전쟁 겪은 팔순의 재미 한국인 8人 "당시 참상,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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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겪은 팔순의 재미 한국인 8人 "당시 참상,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었죠"

창환(원산창해) 0 77

6·25전쟁 겪은 팔순의 재미 한국인 8人 "당시 참상,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었죠"


6·25전쟁 겪은 팔순의 재미 한국인 8人 "당시 참상,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었죠" (daum.net) 



'6·25전쟁 회고록' 한글판 출간.. 송종환 前주파키스탄 대사 번역

사람/ 14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책 '잊혀진 6.25 전쟁'을 펴낸 송종환 전 주 파키스탄 대사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 9. 14 / 장련성 기자

팔순(八旬)이 넘은 재미(在美) 한국인 8명이 10대 때 겪은 6·25 전쟁의 참상을 영문 책으로 펴냈다. ‘6·25 전쟁 회고록: 1950~1953’ 집필에 참여한 이는 초대 미주 한국시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해온 최연홍 박사, 춘원 이광수의 차녀 이정화 박사, 육당 최남선의 손자 최학주 박사, 조선일보 편집인과 제헌국회의원 등을 지낸 근촌 백관수의 차남 백순 박사, 미 하원 코리아게이트 조사특위 전문위원을 지낸 안홍균 선생, 미국 질병통제본부 의료통계학자인 최재원 교수, 핵물리학 박사인 김승곤 교수,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강창욱 박사 등이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은퇴한 이들은 모두 워싱턴DC 인근에 거주하며 오랜 시간 교류하다 “죽기 전에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자”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책에서 6·25 전쟁 기간 중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최학주 박사는 “1950년 6월 28일 서울에 입성한 북한군이 최초로 취한 행동은 서울대 의과대학 병원에 들이닥쳐 병상에 누워 있던 국군 부상병들과 그들을 돌보던 의사와 간호원을 학살한 것이었다”며 “지붕 위에 나부끼는 적십자 깃발은 무의미했다”고 썼다.

이정화 박사는 부친 이광수 선생이 북한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됐다 유엔군의 반격 후 평양으로 끌려 갔다고 기억했다. 이 박사는 “유엔군이 서울로 진격해 오던 1950년 9월 24일 밤 공산당원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사람들을 마구 총살하고, 총이 없는 자는 나무 막대기에 쇠창살을 꽂아 떼를 지어 다니며 양민들을 찔러댔다”고 했다.

(왼쪽부터)최연홍, 이정화, 최학주, 백순, 강창욱

안홍균 선생은 “수 년간 숨어 지내다가 모습을 드러낸 남한의 공산주의 지하 조직원들은 현역과 퇴역 경찰관들을 찾아내 무자비한 복수를 가했다”고 했다. 동대문 근처 학교 운동장에 벌어진 인민재판 때는 “등 뒤로 팔이 묶인 채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남자 주위로 수백 명이 둘러싸고 있었고, 북한 군인들과 소총·칼·죽창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근처에 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발간은 주(駐) 파키스칸 대사를 지낸 송종환 경남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송 교수는 주미대사관과 주유엔대표부에 근무하면서 최연홍 박사 등과 친분을 쌓았고 그 인연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송 석좌교수는 “6·25 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록들을 편집함에 있어 여덟 명 필자들의 글에 조금이라도 흠이 되지 않도록 성심을 다했다”며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의한 통일을 주도해야 함을 새기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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