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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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녀를 보내고

송병혁 0 3490

  횅하니 허전한 이 마음을 무엇에다 비길꼬? 썰물이 쓸려나간 텅 빈 개펄과도 같을까. 추풍낙엽(秋風落葉) 다 날려버린 겨울나무에다가나 견줄까.

  열흘 동안 아침저녁 재롱부리고 응석도 하다가 훌쩍 다시 미국으로 날아 가버렸다. 혼자 남은 할아비의 공허한 심정은 몇 시간이 지나도 가누기 힘드네. 다섯 돌이 다된 사내놈은 TV 카툰(Cartoon)과 장난감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귀여웠다. 두 돌 지낸 손녀딸은 태어나서 서너 번을 만났을 뿐인데도 스스럼없이 답삭답삭 내게 안기던 귀염을 잊을 수가 있어야지.

  ‘외손자 귀여워하느니 방아괭이 귀여 하라’고 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네 동양에서는 혈육(血肉)의 정이 유별난 것도 사실이나 한국인의 심정에는 특별히 정(情)이라는 깊은 정서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은 정은 그리움의 병(病)이 된다는 현상을 지금 내가 체득할 것도 같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썰물이 쓸고 간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을 어이하나. 써늘한 마음바닥의 그리움은 아득한 가을하늘처럼 끝이 없구나. 싸한 아쉬움은 심장을 휘젓다가 대뇌를 거쳐서 코끝까지 찡하게 치고 나간다. 화사한 날씨에 아름다운 가을인데도, 인사동의 붐비는 주말을 걸어가도, 썰물이 쓸어간 개펄처럼 내 마음은 여전히 텅 빌 뿐이다.

  돌아와서 많이 밀린 과제를 놓고 컴퓨터를 열었지만 허전허전 손가락은 생각도 없이 미끄러지기만 한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포도를 씻어 씹다가 쿠키 하나도 먹어본다. 가을의 그리움 같은 기분이 더해서일까. 젊은 날 이성(異性)에 대한 그리움과는 또 다른 감회이다. 늙은이의 혈육에 대한 애착이 깊어지는 현상이 이런가.

  아 불현 듯 어머님의 옛일이 생각나면서 비로소 텅 빈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늘같이 믿고 살아오신 아들이 멀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는 울지 않으셨다. 31년 전인 그 이듬해에 함께 살아오신 며느리와 손녀, 손자가 한꺼번에 미국으로 또 떠나게 되었을 때 당시의 김포공항에서 환송하시면서 통곡을 하셨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그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면서 아내와 자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도 물론 마음이 아렸지만 훗날 어머니께서 써놓으신 노트에서 그 당시의 사연을 직접 읽고서는 참으로 죄송하고도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었다. 그 내용인즉 김포공항에서 아이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시고는 그토록 슬프시고 허전하셨기 때문이다. 따님 댁을 거쳐 텅 빈 집으로 혼자 돌아가셨을 때를 묘사한 부분에는 정말이지 애처로우셨다.

  오늘 이 빈 마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공간개념이라든지 불과 며칠 후면 다시 날아가서 만날 수도 있고 원하면 언제라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30여 년 전 어머님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야속한 생각마저 드셨다니 얼마나 한이 되셨을까? 맏아들이 노모를 버리고 제 식구들만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린 느낌이 드셨을지도 모른다.

  키우시던 개와 강아지들만 데리고 식구삼아 위안을 받으려 하셨다니 그 아프셨던 그리움이 오죽하셨을까. 책상 위의 어머님 사진을 쳐다보면서 내 빈 마음의 아픔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리 사랑’이랬지, 어머니께선 당신의 손자 녀들을 보내시고 마음 아프셨고, 이제 오늘은 내 손 자녀들을 보내고 느끼는 정의 그리움이니까. 그리움이 사랑의 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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