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에 가을채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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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에 가을채비를

송병혁 0 2835

  입추(立秋)는 일찍이 가을의 시작이라 말해왔는데, 오늘 가을 낌새를 알아차리는가? 날씨는 여전히 덥고 거의 날마다 비가 뿌리는데 가을의 느낌은 어디에 있나.

  춘종하장(春種夏長)이라 봄에 파종하면 여름에 성장한다는 원리는 우리 농경사회의 전통을 익히 알고있다. 울타리에 매달린 넝쿨에 애호박이 하루가 다르게 동글동글 굵어지는 모습이 이때에 볼 수가 있다. 무더운 여름의 성장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농부가 푸른 논들에 나가면 무럭무럭 벼가 자라는 소리가 들릴 듯 생장의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런데 입추, 그러니까 가을이 시작되었다고? 그 낌새를 알아차리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입추는 태양이 황경(黃經) 135도에 이르는 때가 된다. 무더위 열기는 말복(末伏)을 앞둔 채 가실 줄을 몰라도 태양의 각도는 어김없이 변천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입추에 우레가 울고 100일이 되면 서리를 본다(立秋响雷, 百日见霜)는 중국어 표현이 있다. 당연히 입추 후 1백날이 가면 입동(立冬)이 될 테니까. 가을이 다 하고 겨울로드니 서리 아니 내리겠는가. 이 후덥지근한 더위에 겨울 서리라니! 그렇지만 세월은 어김없는 법인 걸.

  ‘무이파’라 이름 한 태풍이 서해에서 북상하면서 아침부터 바람 불고 비가뿌린다. 한여름 더위 식히는 데는 소나기만한 게 또 있으려고. 한 바탕 비가 내릴 때마다 그만큼 여름 열기를 식혀가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에 가랑비까지 맞으며 오늘 아침 산책길도 살짝 적셨다. 하긴 이때쯤이면 소나기, 취우(驟雨)도 종종 내리지 않던가. 그래서 한낮의 더위가 혹독한 듯해도 서쪽에서 서늘한 양풍(凉風)이 불어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쉽사리 더위를 무시할 수야 없지.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적 표현이었지만 가을의 늦더위를 인디안 여름(Indian Summer)이라 하여 오래 가진 못해도 제법 성가시게 덥다고 했다. 한자 표현에도 ‘입추 아침엔 시원한 바람 불다가도, 입추 저녁엔 열기가 소를 죽인다(早立秋冷飕飕, 晚立秋热死牛)’ 고도 했으니까.

  그래서 입추의 비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立秋下雨人歡樂), 처서에 오는 비는 만인의 근심이라(處暑下雨萬人愁) 했다. 기온이 높고 농작물이 한창 자라야 할 입추 절후에는 반가운 비가 된다. 사람까지 시원하게 하거든. 그래도 한 보름 더 지나면 맞이할 처서 때는 좀 달라진다. 벼가 패서 익어야 하는 절기라서 비보다는 따뜻한 가을 햇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락이 영그는 계절이 가을’이니까. 가을 추(秋) 자를 자세히 보면 나락 화(禾) 변에 불 화(火)를 붙였지. 벼가 성숙한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 가을을 거둘 채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주대(周代)에는 천자(天子)가 입추에 삼공구경(三公九卿)과 제후 대부들을 거느리고 가을맞이로 서쪽 교외에 나갔다. 가을을 의미하는 서쪽, 서쪽 방위의 신(神)인 중국신화의 소호(少嗥)에게 제사를 지낸다. 비록 가을 낌새가 입추에 아직 쉬 포착되지 않더라도 어김없이 추수해야할 가을이 코앞에 다가섰으니, 우리도 채비를 해야 하리라.

  봄에 심었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있을 것이다. 동작서수(東作西收)로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둔다 했다. 긴 겨울을 위해 우리는 가을을 추수해야한다. 그게 바로 천자문(千字文)에서도 외웠던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사시절(四時節) 농경사회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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