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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鎭川)은 충청북도 북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 때 금물로군 또는 만노, 수지, 신지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新羅 : 685) 시대에 흑양군 혹은 황양이라 하였다. 고려(高麗)초에 와서 강주로 개칭되고, 뒤에 진주로 하였다가 창의현으로 승격하여 현령(縣令)을 두었고 1895(고종 32)에 진천군(鎭川郡) 이 되었다.


   성()은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의 관계를 표시하는 부호(符號)로서,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稱號)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즉 고구려(高句麗)는 건국초기인 1세기 무렵부터, 백제(百濟)4세기 무렵인 근초고왕(近肖古王), 신라(新羅)6세기 무렵인 진흥왕(眞興王) 때부터 성()을 쓰기 시작하여 고려(高麗) 시대에 와서 일반화 되었다고 본다. 초기에는 왕실(王室)의 성을 따라 쓰거나 왕실(王室)에서 사성(賜姓)해 주어 사용하였는데 중국과 교류가 빈번해지고 한자문화(漢字文化)의 영향을 받아 고려중엽(高麗中葉)부터는 일반화 되었다고 본다. 참고로 1985년 경제기획원 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274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 중 송()씨는 17번째로 가구수(家口數)131,900가구에 557,100명이며 본관(本貫) 수는 51곳으로 나타났다.

   우리 진천송씨(鎭川宋氏)는 송순공(宋舜恭 : 신라때 대아찬을 지냄)을 시조(始祖)로 하나 계대(繼代)가 불명(不明)하여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진천백(鎭川伯)에 봉()해 졌던 후손 인()1()로 하여 진천송씨의 관조(貫祖)로 하고 있다. 우리 진천송씨는 2000111일 경제기획원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가구 수는 8,925가구에 인구는 29,04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