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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4-09 (토) 12:01
ㆍ조회: 3122  
  고려사 열전 (임연)-진천임씨 시조
 
 

임연 (林衍) [임유무 (林惟茂)]


 

임연(林衍)의 초명은 승주(承株)이다. 그 아비는 누구인지 모르나, 진주(鎭州)에서 우거(우거)하여 주리(주리)의 딸을 취(취)하여 임연을 낳았으므로 드디어 진주를 관향(관향)으로 삼았다. 임연은 봉목시성(봉목시성)으로 빠르고 힘이 있어 능(能)히 몸을 엎드려 팔로 다니며 혹은 기와를 지붕 위로 던지기도 하였다. 대장군(大將軍) 송언상 (宋彦祥)의 심부름꾼(養卒)이 되었다 뒤에 그 고향에 돌아갔는데 몽고병(蒙古兵)이 마침 이르렀으므로 임연이 향인과 함께 이를 쫓으니 드디어 대정(隊正)에 보(補)하였다. 임효후 (林孝侯)가 임연의 처(妻)와 간통하자, 임연이 이를 알고 임효후의 처를 유인하여 간통하므로 임효후가 유사(有司)에 고하니 유사가 임연의 죄를 다스리고자 하는지라 김준(金俊)이 그 사람됨을 장(壯)하게 여거 힘써 구하여 면함을 얻게하고 또 천거하여 낭장(郎將)을 삼았으므로 임연은 항상 김준을 아비로 부르고 김충(金沖)을 숙부라 하였다. 임연은 김준과 함께 최의를 죽이고 위사공신 (衛社攻臣)이 되매 누천(累遷)하여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었다.

김준이 국사(國事)를 맡음에 미쳐 위복(威福)을 천단하니 원종(元宗

)이 이를 미워하였고 임연도 또한 김준과 함께 틈이 생겨 드디어 김경(金鏡) 최은 등관 함께 이를 베었으며 김경 최은의 세력이 자기를 핍박함을 미워하여 야별초(夜別抄)를 보내어 김경 최은 및 그 아우 최기를 잡아 이를 베어 저자에 목을 달았다. 어사대부(御使大夫) 장계열(張季烈)은 말을 타고 격구(擊毬)를 잘하였는데 성품이 담박하고 예(禮)가 있으므로 왕의 친신(親信)한 바가 되어 항상 와내(臥內)에 출입하였고, 대장군 기온(寄蘊)은 왕의 서매(庶妹)의 사위가 되어 기밀에 참전하였으며, 또 김준의 가재를 적물하여 진보로써 김경 최은에게 뇔물 하였으므로 임연이 이를 미워하여 모두 섬에 유배 하였다. 삼별초(三別抄)와 육번도방(六番都房)을 구정(毬庭)에 모으고 재상(宰相)과 함께 의론하여 말하기를,

<내가 왕실을 위하여 권신(權臣)을 제거 하였는데 왕이 이에 김경 등과 함께 꾀하여 나를 죽이고자 하니 가히 앉아서 죽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내가 대사(大事)시역(弑逆)을 행하고자 하오 그렇지 않으면 해도(海島)에 귀양보낼 것이니 어찌하리요>

하니 재추(宰樞)가 감히 대답치 못하거늘 임연이 차례로 이를 물으니 시중(侍中) 이장용(李藏用)은 이에 손위(遜位)할 것을 말하고 참지정사(參知政事) 유천우(兪千遇)는 불가하다고 역설(力說)한지라 임연이 결단치 못하고 파(罷)하였는데 이튿날 밤에 임연이 전장군(前將軍) 권수균, 대경(大卿) 이서, 장군(將軍) 김신우를 가두고 차례로 그 죄(罪 )를 헤아려 말하기를,

<권수균은 천구(賤口)로서 외람되이 대직(大職 )을 받았고, 그 처(妻의) 전부(前夫)의 딸을 간음하고 김신우는 아비의 첩(妾)을 간통하였다>

하고 모두 이를 베어냄으로 중심(衆心)을 두렵게 하였다.

임연이 갑옷을 입고 삼별초 육번도방을 거느려 안경공 왕창의 집에 나아가 문무백관을 모아 왕창을 받들어 만세를 부르며 본궐에 들어가 왕위에 나아가게 하니 종실과 백관이 조하하는데 홀연히 풍우가 갑자기 일어나 나무를 뽑고 기와를 날렸다. 축하를 마치매 임연이 급히 뜰에 내려 이장용에게 절하니 대개 손위(遜位)의 계책을 찬동하였기 때문이다. 때에 왕은 진암궁에 있었는데 임연이 좌부승선 이창경으로 하여금 핍박하여 내치니 좌우가 다 흩어지고 왕도 비를 무릅쓰고 걸어나가는 지라 이창경이 타고 있던 말을 바치고도 그 종자 5인으로 하여금 번갈아 왕비(王妃)를 시종하여 별궁으로 옮겼다가 이어 또 왕을 김애의 구제에 옮기고 내랑의 진보를 도적질 하였다. 처음에 임연이 폐립 할것을 꾀할 때 사공 이응렬이 말하기를.

<용손(龍孫)이 한 분만 아니니 어찌 반드시 지금의 왕뿐이리요>

하더니 이에 이르러 이응렬이 소리쳐 뛰면서 기뻐함이 얼굴에 나타나니 이응렬은 임연의 아들 임유무의 부옹(婦翁) 이었다. 왕창이 임연으로 교정별감을 삼았는데 임연이 김준의 구제로 옮겨가지 왕창이 육번동방을 보내어 이를 호위하게 하였다. 이에 세자가 연경으로부터 돌아와 파사부에 이르니 정주 관로 정오부가 가만히 강을 건너 변(變)을 고하여 말하기를,

<임연이 이미 폐립하여 동궁이 난을 듣고 입국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야별초 20인을 경상(境上)에 복병시켜서 기다리니 바라건대 입경하지 마소서>

라고 하는지라 세가가 이를 듣고 의심하고 주저하니 대장군 정자여 등이 말하기를,

<저 못난 놈이 어찌 감히 그 같이 하리요. 무근(無根)한 말이니 어찌 가히 믿으리요>

하니 나유가 말을 채찍질 하며 나와 말하기를,

<일을 아직 알수 없으니 변을 관망하고 들어가도 오히려 늦지 않나이다. 적신(賊臣)의 속이는 바가 되지 말게 하소서>

라고 하고, 무덕장군 김부윤도 이를 말하였다. 제교(諸校) 정인경은 인주 수령 정신보의 아들인데 가만히 강을 건너 아비에게 가서 탐문하고 돌아와 그 상황을 자세하게 말하였고 정오부도 또한 말하기를,

<고주사(告奏使) 곽여필도 또한 영주에 있으니 바라건대 사람을 시켜 이를 보게하소서>

라고 하였다. 세자가 같이 온 몽고 사자(使者) 7인에게 시켜 곽여필을 영주에서 잡고 또 의주방호인 역어(譯語) 정비를 잡아 그 사실을 물어 안 뒤에 세자가 통곡하고 도로 몽고에 들어가고자 하니 제신이 모두 주저하며 따르려 하지 않았으나 홀로 정인경이 힘써 권하므로 이에 행차 하였다. 임연이 마음대로 폐립하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감히 아무로 어찌하지 못하리라>

고 하더니 세자가 북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음에 미쳐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 하였다. 장군 유원적이 낭장 정수경과 함께 임연을 죽이고 왕위를 복구하고자 하여 장균 윤수에게 말하니 윤수가 거짓으로 승낙하고 임연에게 달려가 고하므로 임연이 잡아 국문 하였으나 정구경은 불복하였고 유원적은 자복하는 지라 드디어 이를 죽이고 그 집을 적몰(籍沒) 하였다.

몽고가 사신을 보내어 폐립한 것을 책(責)하니 임연이 거짓으로 왕이 병으로 손위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몽고가 또 병부시랑 흑적을 보내어 조로써 왕광 왕창 및 임연을 불러 이를 물으니 임연이 두려워 하여 대추를 그 집에 모아 조서에 답할 것을 의논 하였는데 임연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국가를 바로 잡은 뒤에 제소에 조회하려 하였더니 이제 불러 힐난함이 이같이 급하니 장차 이를 어찌할까>

라고 말하고 눈물을 흘렸다. 흑적을 향연하며 진보를 뇌물함이 매우 많았으며 또 3-4품으로 하여금 각각 무기명으로 봉서를 올려 조칙에 편의하게 답할 내용을 진술케 하였다. 또 흑적을 그 집에서 향연하니 흑적이 말하기를,

<마땅히 왕위를 회복함이 좋을 것이다>

하므로 임연이 부측이 재추를 모아 왕창을 폐하고 왕을 다시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 동지추밀 조오는 평소에 공손하여 자못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은지라 임연이 폐립 할때에는 조오가 병으로 참여치 않았다, 임연이 권세를 천단함에 미쳐 조야(朝野)가 조오에게 마음이 돌아가는 지라 장군 김문비가 임연을 죽이고자 하여 조오의 아들 장군 조윤번과 더불어 죽이고자 하여 이미 약속이 정해졌으므로 조오에게 고하였으나, 조오가 쫓지 않았다. 김문비는 일이 이류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도리어 임연에게 고하니 임연이 조오를 흑산도에 유배하고 조윤번 및 조오의 여서인 비서랑 장호 등 7인을 죽이고 그 집을 적목 하였으며 또 조오의 아들 조윤온을 유배 하였다. 조오는 힘이 능히 임연을 도모할 수 있었는데 겁을 내어 화를 불렀으니 때에 사람들이 애석히 여겼다. 어느 날 사람이 자은사에서 재(齋)를 설(設)하고 기를 세움을 보고 임연의 아들 임유간에게 고하기를,

<난이 일어나서 관기가 이미 세워졌다>

고 하거늘 임유간이 달려가 고하니 임연이 문을 닫고 놀래었다. 왕이 몽고에 행차하매 임연이 왕이 폐립한 일을 누설할까 두려워하여 임유간 및 복심으로 하여금 왕을 호종케 하였는데 경사에 이르러 임유간이 강화상을 통하여 그 일을 조작하여 이를 아뢰니 황제가 칙하기를,

<세자와 이장용이 이미 자세히 진술 하였으므로 짐이 상세히 알고있다. 너의 아비가 함부로 왕을 폐하였다. 하니 정말인가>

하므로 임유간이 아뢰기를,

<이는 이장용의 소위이니 바라건대 이를 물어보소서>

라고 하므로 황제가 이것을 이장용 및 신사전 원부에 물으니 각각 실지를 대답하는지라 왕제가 이를 납득 하였는데 임유간이 다시 아뢰니 황제가 이를 중지 시키고 말하기를,

<너의 말한 바는 모두 거짓이다>

고 하고 드디어 그 목을 베고 중서성에 명하여 임연에게 첩하기를

<너의 아들이 와서 아뢰고 신료도 또한 와서 주 함이 있었으나 짐의 뜻에 상세하지 않으니 네가 이때에 마땅히 입조하여 밝게 변명하도록 하라>

고 하였으므로 임연이 제명을 거역하고자 하여 야별초를 제도에 보내어 백성들을 독촉하여 섬에 들어가 살게 하였다. 임연은 근심하다가 등창이 나서 죽었는데 하늘이 10여일 동안이나 흐리다가 이에 이르러 청명하게 되었다. 때에 순안후 왕종이 감국(監國) 하였는데 임유무의 청으로 참지정사를 증(贈)하고 장렬(莊烈)이라 시호(諡號) 하였다.

왕종이 또 임유무로 교정별감을 삼으니 임유무가 도감육번을 모아 스스로 그 집을 호위하고 임유인으로 하여금 서방삼번을 거느리고 임유간의 집을 호휘케 하여 호응케 하였다. 임유무는 동요와 참설이 성행함을 꺼리어 영(令)하기를,

<능히 동요와 도참을 말하는 것을 잡는 자가 있으면 벼슬과 재물로 상 하리라>

하고 일관 오윤부 등을 불러 나라를 진압할 꾀를 물으니 오윤부가 말하기를,

<병이 깊은 후에야 의사를 구하면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황제가 두련가국왕(頭輦哥國王) 조평장 등으로 하여금 왕을 호위하게 하여 동환(東還)케 하거늘 왕이 먼저 정자여를 보내 국중 신료를 유시하여 구경(舊京)에 나와 도읍하라고 하였는데, 임유무는 마음속으로 쫓지않으려고 하였으나, 중의가 만지 않을까 두려워 하여 치사한 재추 3품 이상과 현관 4품 이하 및 대성을 시켜 각각 실봉으로써 가부를 의논케 하니 모두 말하기를,

<군명이라 감히 쫓지 않으리요>

하므로 임유무가 분노하여 어찌 할 바를 못하고 제도에 수로방호사 및 산성별감을 분견하여 인민을 모아 보존케 하여 왕명을 거역하게 하고 또 김문비로 하여금 야별초를 거느리고 교동을 진수케 하여 북군을 막게 하였다. 임연이 보낸 바 야별초는 경상도에 이르러 백성을 독촉하여 제도에 입보케 하였다. 안찰사 최간이 동경부유수 주열, 파관 엄수안과 함께 꾀하여 야별초를 잡아 금주에 가두고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왕이 입경함에 미쳐 사잇길로 행재소에 갔다. 전라도 안찰사 권탄과 충청도 안찰사 변량이 왕이 돌아옴을 듣고 행재소에 달려 가거늘 임유무가 이 말을 듣고 사람들 보내어 이를 추급하였으니 미치지 못 하였다. 임유무가 어린 아이로서 아비의 권세를 이저 잡으매 결단한 바를 알지 못 하고 매사를 이응렬과 주밀부사로 치 송군비(宋君悲)등에게 결단케 하였는데 자부(姊夫)인 어사중승 홍문계}와 직문하성 송송례(宋松禮)는 겉으로는 비록 면종(面從)하나 마음으로는 항상 분하게 여겼다.

임유무가 장차 왕명을 거역하려 하매 중외가 흉흉하는지라 홍문계가 송송례에게 모의하니 송송례의 아들 송염과 송분은 모두 위사장이된지라 송송례와 홈문계가 삼별촐글 모으고 대의로써 설유하여 임유무 잡기르 꾀하였다. 임유무가 변을 듣고 군사를 옹위하여 기다리므로 삼별초가 그 집 동문을 파괴하고 돌입하여 난사하니 가인이 이에 무너지는지라 임유무 및 자부 대장군 최종소를 사로잡아 섬에 유배하고자 하다가 몽고의 사신이 관사에 있으므로 다른 변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모두 저자에서 베고 이응렬 송군비 및 족보인 송방우, 이성로 외제인 이황수 등을 유배하고 이에 서방삼번 및 조셩색을 파하니 조야가 크페 기뻐하며 모두 갱생하였다고 하였다. 이응렬은 머리를 깍고 도망하니 쫓는자가 이를 잡아 구정에 이르렀는데 소년배들이 그 죄를 헤아리며 다투어 주먹질을 하였고 임유인은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죽지 않으므로 몽고사가 이를 보고 그 목을 움켜잡아 죽였다. 임유무의 모 이씨는 성질이 투기하고 험하매 므릇 명을 거역하고 살육한 것도 대개 그의 가르침 이었다. 패하매 미쳐 옷을 잘입고 진보를 가지고 도망하고자 하거늘 조오의 처자가 문에 이르러 이를 엿보다가 머리를 끌고 뺨을 쳤으며 또 마을에서 숙원을 가진 자가 있어 다투어 모여 그 옷을 찢어 벗기니 보는 자가 담을 이루어 숨지 못하고 드디어 미나리 밭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다투어 조약돌을 던졌다. 뒤에 그 아들 임유간, 임유거, 임유제, 등과 함께 잡아서 몽고로 직송 하였다.

원문


 

林衍, 初名承柱. 其父不知何許人, 僑寓鎭州, 娶州吏女, 生, 遂以鎭州爲貫. 蜂目豺聲, 捷而有力, 能倒身臂行, 或投蓋于屋梁. 爲大將軍宋彦祥廝養卒, 後歸其鄕, 蒙古兵適至, 與鄕人逐之, 遂補隊正. 有林孝侯者通妻, 知之, 誘孝侯妻通焉, 孝侯告有司, 有司欲治罪, 金俊壯其爲人, 力救得免. 又薦爲郞將故, 常呼爲父, 爲叔父. , 爲衛社功臣, 累遷樞密副使. 及當國, 專擅威福, 元宗忌之, 又與有隙, 遂與金鏡·신출자等誅之. 又忌·신출자勢逼己, 遣夜別抄, 捕·신출자及其弟, 斬之梟市. 御史大夫張季烈, 善騎擊毬, 性恬淡有禮, 爲王所親信, 常出入臥內. 大將軍奇蘊, 爲王庶妹壻, 叅典機密, 又籍家財, 以珍寶賂·신출자, 惡之, 並流于島.
 
集三別抄·六番都房于毬庭, 與宰相議曰, “我爲王室, 除權臣, 王乃與金鏡等謀, 欲殺我. 不可坐而受戮, 我欲行大事, 不爾竄之海島, 如之何?” 宰樞莫敢對. 歷問之, 侍中李藏用, 乃以遜位爲言, 叅知政事兪千遇, 力言不可, 未決而罷. 翼日夜, 囚前將軍權守鈞, 大卿李敘, 將軍金信祐, 歷數其罪曰, “守鈞以賤口, 濫受大職, 敘淫其妻前夫女, 信祐奸父之妾.” 遂皆斬之, 以恐衆心. 擐甲, 率三別抄·六番都房, 詣安慶公淐第, 會文武百僚, 奉呼萬歲, 入本闕, 卽王位. 宗室·百官朝賀, 忽風雨暴作, 拔木飛瓦. 賀畢, 率然下階, 拜藏用, 蓋喜遜位之策也. 時王在辰巖宮, 使左副承宣李昌慶, 逼出之. 左右皆散, 王冒雨步出. 昌慶進所乘馬, 又使其從者五人, 分侍王妃, 遷于別宮. 尋又遷王于金皚舊第, 盜內帑珍寶.
謀廢立, 司空李應烈曰, “龍孫非一, 何必今王?” 至是, 應烈呼嘯踴躍, 喜形於色, 應烈惟茂婦翁也. 爲校定別監. 移入金俊舊第, 遣六番都房衛之. 時世子自燕京還, 至婆娑府, 靜州官奴丁五孚, 潛渡江, 告變曰, “林衍旣廢立, 恐東宮聞亂不入國, 使夜別抄二十人, 伏境上以待, 請毋入境.” 世子聞之, 疑慮彷徨, 大將軍鄭子璵等曰, “彼竪子, 何敢爾耶? 無根之說, 詎可信乎.” 羅裕策馬進曰, “事未可知, 觀變而入, 猶未晩也. 毋爲賊臣所紿.” 武德將軍金富允, 亦言之. 諸校鄭仁卿, 麟州守臣保子也, 潛渡江, 就父探問, 具以狀還白. 五孚亦曰, “告奏使郭汝弼, 亦在靈州, 請使人見之.” 世子使同來蒙古使者七人, 執汝弼于靈州, 又執義州防護譯語鄭庇, 問知其實. 然後世子痛哭, 欲還入蒙古, 諸臣皆猶豫, 不肯從, 獨仁卿力勸乃行.
 
惟茂以童穉, 繼執父權, 罔知所裁, 每事決於應烈與樞副致仕宋君斐等. 姊夫御史中丞洪文系及直門下省宋松禮, 外雖面從, 心常憤惋. 惟茂將拒命, 中外洶洶, 文系謀於松禮. 松禮, 俱爲衛士長, 松禮·文系集三別抄, 諭以大義, 謀執惟茂. 惟茂聞變, 擁兵以待, 三別抄壞其家東門, 突入亂射, 衆乃潰. 擒惟茂及姊夫大將軍崔宗紹, 欲流于島, 以蒙古使在館, 恐生他變, 皆斬于市, 流應烈·君斐及族父宋邦又·李成老, 外弟李黃綬等. 乃罷書房三番及造成色, 朝野大悅, 咸謂更生. 應烈剃髮而逃, 追者獲之至毬庭, 有少年輩數其罪, 爭拳之. 惟栶自剄未殊, 蒙古使見之, 扼其喉而殺之. 惟茂李氏, 性妬險, 凡拒命殺戮, 多其敎也. 及敗, 盛服懷珍寶欲逃, 趙璈妻子, 至門伺之, 捽髮批頰. 又里有宿怨者爭聚, 裂脫其衣, 觀者如堵, 不得匿, 遂入芹田, 兒童爭以瓦礫擲之. 後幷其子惟幹·惟柜·惟提等, 執送蒙古.
 
于琔鎭州人. 元宗朝, 以譯語, 累遷郞將. 嘗使蒙古, 因留不返, 與叛人陸子讓, 請帝以聖旨取家屬, 王上表曰, “在昔, 春秋之義, 尙不容三叛人, 况今皇帝之時, 何反受二賊子?” 又與叛人金守磾, 俱剃髮, 在也速達營, 訴曰, “高麗有急, 必遷濟州, 今言復都舊京, 非實.” 也速達信之. 及太子自蒙古還, 至也速達營, 也速達欲令等對辨, 太子曰, “何信叛人之言? 吾寧祝髮被拘於此, 豈可與叛人辨哉?” 也速達愧而遣還, 只留樞密使金寶鼎, 指揮金大材, 譯語李松茂等.
東還娶林惟栶妻蔡氏. 中書省以爲, “朝廷嘗督取林衍·惟栶家屬赴京, 蔡氏不遵朝命, 漏網獨留, 而娶之, 罪莫大焉.” 遂移文達魯花赤, 誅·蔡氏, 父樞密使仁揆亦坐, 流靈興島. 兄弟三人登科, 其母例當受廩, 有司議曰, “凡祿三子登第者母, 爲其生文章輔弼也. 今母雖有登第三子, 一爲逆臣, 不宜與祿.” 遂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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