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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8-22 (목) 01:01
ㆍ조회: 76  
  어느 대장부의 일생
어느 대장부의 일생
번역문

   옛날 나와 공은 조정의 죄인이 되어 함께 견책을 받고 축출되었다. 내가 서용(敍用) 되어 연행(燕行)을 갈 때에도, 공은 여전히 교외(郊外)에 은둔해 있어서 내가 술 한 병을 들고 고별(告別)하러 갔다. 나는 공의 한가한 생활을 부러워하고, 공은 먼 길 가는 나를 걱정하면서 서로 한숨을 내쉬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내가 무사히 사행에서 돌아왔을 때, 공은 세상을 뜬 지 이미 석 달이나 되었다. 잠깐 사이에 공은 영영 고인이 되었으니, 인간 세상의 외로운 이 몸에게 지기(知己)로 누가 남았단 말인가? 공이 숨을 거두었을 때에는 가서 널을 쓰다듬으며 한번 통곡하지도 못했고, 공의 장례 때에는 상여 끈을 잡고 전송하지도 못하였으니, 이승과 저승의 길이 이로부터 나뉘고 말았다. 그러니 내 어찌 공을 위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문

昔余與公得罪于朝, 同被譴逐。及余起廢燕行也, 公猶屛迹郊外, 余以一壺告行。余羨公閑養, 公憂我遠役, 相與噫噓而別。逮余之生還也, 公之入地, 已三閱月矣。俯仰之間, 已成千古, 踽踽人間, 誰知己者? 沒不得憑棺一慟, 葬不得執紼以送, 幽明之路, 從此訣矣夫, 余烏能已於一言?








이 글은 월사가 지기지우(知己之友)였던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 1556~1620)를 위해 지은 신도비명이다. 이 비는 지금도 표옹의 고향인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장암마을의 묘소 앞에 우뚝하다.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묘소 근처에는 주지번(朱之蕃, ?~1624)의 글씨를 현판으로 새긴 망모당(望慕堂)이 오늘에 전해 온다. 망모당은 표옹이 선친을 여읜 뒤 지었다는 집이다. 주지번의 글씨는 가까운 전주의 객사(客舍)에도 내걸렸으니, 풍패지관(豐沛之館)이란 아주 큰 네 글자이다.

 

   전주는 예로부터 ‘풍패지향(豐沛之鄕)’으로 일컬어졌는데, 이곳의 시장 바닥에는 “안 사도 좋으니, ‘안사’처럼 떠나라.”하는 말이 전해온다. 이 말 속에서 안사는 이안사(李安社)이니, 조선을 개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고조부(高祖父), 곧 목조(穆祖)의 이름이다. 목조는 일찍이 이곳을 떠나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갔다. 나중에는 함경도 영흥(永興)으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이성계가 태어나 조선을 열었으니, 전주는 비로소 풍패지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본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패군(沛郡) 풍현(豐縣) 사람이므로, 풍패는 건국의 시조나 제왕의 고향을 지칭하였다. 전주의 객사가 풍패지관이란 이름을 얻은 까닭이다. 아울러 전주성의 남문은 풍남문(豐南門), 서문은 패서문(沛西門)이 되었다.

 

   주지번은 명나라 산동(山東) 치평(茌平) 출신으로, 1595년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이부 시랑(吏部侍郞)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1606년(선조 39) 명나라 신종(神宗)의 손자가 탄생하자, 이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에 정사(正使)로 왔다. 당시 벼슬은 한림원 수찬(翰林院修撰)이었는데, 서화(書畫)에 뛰어나 그의 글씨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성균관(成均館)의 명륜당(明倫堂) 현판 글씨와 소수서원(紹修書院)의 안향(安珦) 사당 편액 등도 그가 썼다고 한다. 허균(許筠)과도 잠시나마 교류가 깊었으니, 허난설헌의 시를 가져가 중국 땅에 널리 알린 인물이 바로 주지번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망모당의 현판 글씨가 주지번의 붓끝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주지번은 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전라도 장암마을까지 와서, 관청도 아닌 사가(私家)에 와서 현판 글씨를 써줬을까? 이에 관해서는 향긋한 이야기 한 편이 이곳 진천(鎭川) 송씨 집안에 전해 온다. 『표옹유고(瓢翁遺稿)』에는 전하지 않는 내용이다.

 

   1593년 5월 표옹은 정철(鄭澈)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 이때 우연하게 객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한 청년을 만났는데, 청년이 『장자(莊子)』의 한 대목을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닌가? 이에 표옹이 그를 불러다가 연유를 물었다. 청년은 몇 해 전 과거에 낙방한 뒤, 다시 재도전을 위해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하는 중이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표옹은 청년에게 과거 답안의 작성 요령과 서책은 물론 얼마간의 돈까지 쥐어주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청년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으니, 그가 바로 주지번이다.


   1605년 조선에 온 주지번은 표옹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전주로 향했다. 이때 그는 풍패지관이라는 글씨를 전주 객사에 남긴 다음, 장암마을로 표옹을 찾아갔으나 만나질 못했다. 그는 종내 아쉬운 마음을 망모당이란 현판 글씨와 표옹의 묫자리로 남겼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그가 나중에 표옹이 묻힐 자리를 미리 찍어주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613년 마침내 만났다고 전해진다. 표옹이 성절사(聖節使)로 다시 중국에 갔을 때, 주지번이 표옹의 숙소로 직접 찾아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그 후 표옹의 신도비명을 지은 월사 또한 글씨에 뛰어난 인물로, 신흠(申欽)ㆍ장유(張維)ㆍ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후기의 4대 문장가로 이름이 높다. 그런 그가 표옹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니, 신도비의 말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중군(殿中君)이 나에게 말하기를, “선군자(先君子)께서 늘 ‘백사(白沙) 이공(李公)ㆍ추포(秋浦) 황공(黃公)ㆍ월사(月沙) 이공(李公)이 나의 벗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공만 살아계시고 모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묘비에 새길 글을 공께서 맡아주십시오. 삼가 비석을 다듬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정녕 공의 명(銘)을 차마 지을 수도 없지만, 또한 공의 명을 차마 짓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에 드디어 눈물을 훔치며 글을 짓고, 이어서 명을 붙인다.

[殿中君謂余曰: “先君子常言‘白沙李公ㆍ秋浦黃公ㆍ月沙李公, 吾友也,’ 今皆下世, 獨公在。不朽之託, 子其任之。謹治石以俟。” 余固不忍銘公, 亦不忍不銘。遂掩涕而爲文, 系之以銘。]










   이 글에서 전중군은 표옹의 양자 송흥시(宋興詩)를 가리킨다. 그리고 표옹이 벗으로 허여했다는 백사는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추포는 황신(黃愼, 1562~1617)의 아호(雅號)이다. 따라서 교류인사들만 보더라도 표옹은 조정에서 당대의 명현(名賢)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이었다.

 

   더구나 월사는 묘지명의 중간 즈음에서 “(공은) 깨끗하게 지조를 닦고 효성과 우의(友誼)가 도타웠다. 집안의 생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처자식들이 늘 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으나, 공은 언제나 편안한 모습이었다. 천성이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형편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대를 털어주면서 집안 형편은 묻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없는 친족이 있으면 집으로 데려가 양육하기를 꼭 자기 자식처럼 하였다.[潔修砥礪, 敦行孝誼。不事家人產業, 妻子常苦飢寒, 處之晏如。性好施人, 有以匱告者, 罄橐與之, 不問有無。親族之不能自存者, 館而廩之, 一如己出。]라고 표옹을 평하였다.

 

   바로 이렇게 항상 베풀며 살았기에, 송영구는 생전에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망모당이라는 현판과 천하명당이라는 신후지지(身後之地)를 얻었다. 사후에는 조선의 대문장가이며, 지기지우였던 이정귀에게서 자랑스러운 묘지명을 얻었다. 사내답게 살다간 대장부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귀한 보답이었다.
유영봉
글쓴이유영봉(劉永奉)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주요 저서

  • 『고려문학의 탐색』, 이회문화사, 2001
  • 『하늘이 내신 땅』, 문자향, 2001
  •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범한서적주식회사, 2009
  • 『천년암자에 오르다』, 흐름출판사, 2013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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