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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3 (화) 22:39
ㆍ조회: 49  
  양성지와 사돈을 맺은 진천송씨 종사랑공 諱 상(도사공 용인)

淑 夫 人 宋 氏 之 墓」
夫人從仕郞宋裳之女承旨梁瓚之妻也宋公娶」
砥平懸監許洋之女正統癸亥生夫人夫人生而」
端美▨▨▨所宜▨以適梁氏而能盡婦道春秋」
宋氏副▨▨▨▨惜乎夫人生二男長曰浻次曰」
淑浻娶密陽府使李世銓之女生一男幼淑娶鈴」
川君尹磻之女生三男長允仁次允義次允禮也」
皇明弘治十年二月立」

숙부인송씨지묘(淑夫人宋氏之墓)
부인은 종사랑(從仕郞) 송상(宋裳)의 따님이며, 승지 양찬(梁瓚)의 아내이다.
송공(宋公)이 지평현감(砥平懸監) 허양(許洋)의 딸을 맞이하여 정통(正統) 계해년(세종 25, 1443년)에 부인을 낳았다. 부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 양씨(梁氏)에게 시집가서 부인의 도리를 다하였다.
▨▨▨▨▨▨▨▨ 애석하도다!
부인은 2남을 낳았으니, 장남은 형(浻)이요, 둘째는 숙(淑)이다. 형(浻)은 밀양부사 이세전(李世銓)의 딸을 맞이하여 1남을 낳았는데 어리다. 숙(淑)은 영천군(鈴川君) 윤번(尹磻)의 딸을 맞이하여 3남을 낳았는데 장남은 윤인(允仁), 둘째는 윤의(允義), 막내는 윤례(允禮)이다.
황명 홍치(皇明弘治) 10년 (1497년) 2월에 세우다.

해설 : 숙부인 진천송씨 부친은 진송10대 종사랑공 諱 상, 조부는 도사공 諱 익, 증조부는 송정공 諱 우 이시다. 우리 족보에 부인의 부친은 생원으로 관직은 나오지 않고, 남원 집안 무과급제 양찬에게 출가하고, 시댁 父는 대제학 양성지로 기록한다. 그러나 부인의 묘표에 의하면 친정댁 父 송상(宋裳)늠 종사랑을 지냈고, 부인은 1443년 출했다. 종사랑은 종9품 문반이다. 종상랑공 손자 諱 결(진송 12代)이 용인 백암면에 입향하여, 도사공 용인 종중이 시작되었다. 비문은 오래되어 일부 결자가 있는데, 아마 남편의 본관이나 관직이 쓰여있고, 부인의 사망날짜가 쓰여져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한편 묘표를 1497년2월 세웠으니 이 무렵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의 묘는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산 78번지(능곡)이며, 모셔있다.
송씨부인 시댁 아버지는 조선전기 문신이자 학자로 유명한 양성지(1415∼1482)이다. 양성지는 세종부터 성종까지 6명의 임금을 섬겼으며, 1441년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고, 집현전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팔도지리지]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 [여지승람(輿地勝覽)], 한방의학 백과사전인 [의방유취] 편찬에 참여하고, 특히 고려사 편찬 작업도 참여했다. 개인 저서는 [눌재집]이 있다. 또한 1449년부터 국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북방에 길게 뻗은 성곽인 행성() 건설에 반대하고, 요충지 중심의 지역방어 개념인 진관()체제를 제안하고 이를 실현시켰다. 1450년 비변10책()을 제안하여, 국방력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외적에게 몸을 낮추고 예물을 많이 바쳐()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한번은 적에게 크게 이겨 저들과 우리의 군사력이 대등한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 후 수호()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며 고려가 요·금의 침략 전쟁에서 승리한 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세조는 "양성지는 나의 재갈량이다."라고 칭송했으며, 그 명성에 맞게 홍문관대제학을 지냈다.

양성지의 명성은 조선전기 뿐 아니라 후기에도 여전하여 1791년 정조의 명으로 3권의 양성지 문집을 발간한다. 한편 [양문양공외예보]는 홍문관에 등용된 양성지의 외손자와 외손의 후예 명부인데, 그 인원이 무려 30명이나 된다. 특이한 것은 족보는 통상 부계혈통을 기록하지만, 양성지의 외손자와 외손의 후예들은 자신이 양성지의 외손 후예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는지 [남원양씨외손보]라는 양성지 외손자 족보를 만들었다. 이처럼 양성지의 학문과 명성은 조선시대 내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드높고, 그 업적은 현시대·고등학교 현행 국사교과서에도 보인다.

우리 족보에 종사랑공 사위가 무과급제자 승지 양찬이며, 양찬의 부친은 대제학 양성지라고 하였다. 그럼 조선초기 대학자로 조선후기까지 유명하고 현재 사학계도 높이 평가하는 양성지가 진천송씨와 사돈을 맺은 것인데 처음에 이를 보고 놀랐다.

양성지는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학자이며 여러 책을 편찬했을 뿐 아니라, 홍문관대제학까지 지낸 인물로 조선초기 대학자이다. 그런데 그의 사돈은 종9품 문반 종사랑에 불과했다. 그래서 잘못 아닌가 생각하여 자료를 찾았는데, 양찬의 처 숙부인진천송씨부인 묘표가 확인된다. 그곳에도 송씨부인의 친정댁 아버지는 종사랑 송상(宋裳)이라 하였다. 우리 족보는 종사랑공이 생원에 합격했다는 것만 쓰고, 관직은 나오지 않는데, 비록 말단 종9품 종사랑 이지만 다음 족보는 이분의 관직도 수록 해야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양성지가 세조13년(1467년) 어명으로 [해동성씨록]을 정리했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책은 양성지 사돈인 진천송씨 집안도 분명히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1673년 비로서 처음 쓰인 우리 계축보 보다 계보가 더 확인되고, 더욱이 묘를 잃은 송정공 도사공 첨지공 조부의 그 지명 정도는 나올 법한데 전래하지 않아 아쉽다.  
송씨부인 남편 양찬은 자(字) 여옥(汝)이고, 호(號) 난포()이다. 1464년(세조 10) 아버지 양성지를 따라 세조를 알현하였는데, 세조의 명으로 활을 쏘아 과녁을 명중시켰으므로 그 자리에서 겸사복()에 임명되었다. 1465년(세조11) 무과에 급제하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부장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1470년(성종1) 삼척부사로 부임하고, 1473년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통정대부 행웅천현감()을 거쳐 1478년 통정대부 행제주목사에 임명되었다. 1482년 승정원 동부승지에 제수되고, 1484년 영해부사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돌아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1486년 수원도호부사로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불법을 저질러 벌을 받았다. 1492년(성종23) 포도대장을 지내고, 1496년(연산군2)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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