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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1-24 (목) 16:13
첨부#1 송언상,_송문주(자치안성신문).hwp (1,170KB) (Down:156)
ㆍ조회: 479  
  고려시대 죽주산성 항몽 영웅 '송문주 장군은 송언상'이라는 단국대 김철웅
얼마전 대종회 이사회의 때  병오 회장님께서 고려 무신정권시절 몽골군이 6차례나 처들어와 고려의 강토와 백성을 필설로는 표현못할 행악을 저질렀고,
 
그중 3차 침입때에  고려의 중심지였던 안성에 있는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쳐 몽고군이 삼남으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 백성들의 피해를 줄인 항몽 전쟁의 영웅 송문주 장군이 진천 송씨임에도
 
 안성시청 관련부서에서 송문주 장군이 진천송씨임을 증거자료로 밝혀달라고 요구했으나,
 
증빙자료를 찾지못해 전전긍긍, 노심초사끝에  관련 입증자료를 겨우 찾아내어 제출했다고 했습니다.
(진천송씨 족보에는 송문주라는 함자는 없고, 송언상이라는 함자만 등재되어있는데, 이명동인으로 동시대인물로 추측될뿐 이라고 함)

  • 어찌 어찌하다가 8년전에 자치안성신문에 이미 보도되었던 기사중에 "송문주 장군의 본명은 송언상이고 자()문주'라고 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 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혹시 못 보시 분들을 위해 기사전문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사진이 들어있는 자료를 첨부물로 올렸습니다. 별도로 첨부물을 확인해 보시길~~~


 

송 언상의 자()는 문주라는 단국대 김철웅 교수의 주장

송문주 장군의 전설이 전해지는 문화재 마을 - 죽산면 매산리 [마을 답사]

자치안성신문(2008929) [2008-10-08 오전 11:18:00]인터넷 입력

지방자치시대라고 한다. 지방자치시대는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지역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본지는 안성의 각 마을과 각 마을 주민들의 바램을 정확히 알고, 주민들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마을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안성의 마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마을 탐방을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죽산면 매산리를 싣는다. - 편집자 주 -


매곡구산한자씩 가져와 매산리


 

매산리는 일제시대에 행정구역 개편이 되면서 매곡과 구산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서 매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곡은 지금은 죽산리의 매곡과 매산리의 미륵당으로 나뉜 것이다.

현재 행정리는 미륵당, 상구산, 하구산, 한평마을 등 4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을에서 부르는 명칭의 자연마을은 웃지시미, 아랫지시미, 미륵댕이, 장광, 한배미, 관앞, 비선거리, 분행 등이 있다

안성군지(1990)에 의하면 지시미는 쌀의 질이 좋기 때문에 예부터 귀한 분에게 바치는 쌀이라 하여 이 마을을 <지성미>라 하던 것이 변하여 지시미라고 불리는 것이라 하고, 미륵댕이는 미륵부처가 있다고 해서, 한배미는 넓은 논배미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장광마을은 옛날에 장광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관앞은 관()앞 마을이라서 그렇다는 것이고 비선거리는 비석이 많이 있어서, 분행은 조선시대에 역원(驛院 : 조선시대 국가에서 운영하던 일종의 숙박시설, 사람과 말 등이 쉬어갔다.)있던 마을이라고 한다.

음력 정월에 각 마을에서는 정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가을에는 거북놀이와 신파’(연극)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분행마을에서는 참나무 서낭에서 제당(초가제당인데 나중에 슬래트로 바꿈)에 유기로 만든 말(20cm)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은 자유당 시절 도난당하고 도난당한 후에는 말을 그린 그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참나무가 없어지면서 10여 년 전부터 그만두었다고 한다.

또 상구산, 하구산마을과 미륵당 마을에서는 음력 10월 초에 날을 잡아서 산신제와 송대장군(송문주 장군)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이것은 음력 99일 지내는 송문주 장군 제사와는 다른 것으로 예전부터 마을사람들이 지내 온 것이라고 했다. 각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내려고도 했으나 시간문제 등으로 마을별로 지낸다고 했다.

한편, 장광마을에는 고려말 공민왕때 사람인 김태권(金台權)의 사당인 죽산재(竹山齋)’1996년에 만들어져 있다.

말을 모시던 제당과 8개의 비석

마을에서는 갈마지(말이 목마른 곳), 주막거리, 광고판(방을 써 붙이던 곳), 절터골(절이 있던 고개, 빈대가 많았다고 한다.), 고린장골(고려시대 무덤이 있는 골짜기), 선바위골(크고 작은 두 개의 선바위가 있다고 한다.), 원이고개(원님이 지나다니던 고개길), 말무덤, 피부병에 좋다는 뱅골 약수터 등 다양한 마을 지명과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관앞이라는 지명과 관련해 지금도 관앞 마을에서는 흔하게 깨진 기와장 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죽산 관아는 죽산리에 있었던 것이 확실해 조선시대 이전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던 흔적인지 확실하지 않다.

말무덤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엇갈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상징적으로 말()을 묻음으로서 동네 화합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실제 말()을 묻은 곳이라는 것이다.

분행역이 있었고, ()을 모시던 제당이 있었다는 증언으로 미루어보아 후자의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흔적을 마을의 화합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을사람들의 지혜일 것이다.

비선거리(비석거리)에는 비석이 많았다고 하고 지금도 8개의 비석이 남아있다.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 죽산공원에 있는 거북이 비석’(府使禹侯弘圭淸德愛民善政去思碑)도 이 곳 비선거리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비석에 대해서는안성 낙원공원, 죽산공원, 죽주산성 입구 석물 및 역사 조사보고서(2005, 이하 보고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원래 15기 정도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한평마을 입구에는 아주 독특한 선정비가 있다. 하나의 돌에 부조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두 개의 선정비가 그것인데 왼쪽이 신미(辛未)2월에 세운 이형수(李馨秀)의 선정비이고 오른쪽이 갑술(甲戌)7월에 세운 최숙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위치는 마을 안쪽에 있던 것인데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죽산리의 공원에 옮기려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여 현재는 꽃밭을 가꾸어 마을의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죽주산성과 송대장군 전설

죽주산성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현장이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과 격전을 치룬 현장이다.

안성맞춤 박물관에 가면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상황을 재현해 놓은 모형물을 볼 수 있는데 이 설명문에 의하면 이 때 우차지계(牛車之計)’를 이용하여 왜군과 싸웠다고 한다.

또한 흔히 후삼국시대라고 하는 신라 말기에 기훤(箕萱)의 근거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궁예가 찾아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죽주산성은 최근 들어 여러 차례 조사와 발굴을 진행했다.

이러한 발굴조사를 통해 최초의 축성시기가 고려시대가 아닌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처음 쌓은 것이 백제시대일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의 3차 침입때인 1236(고려 고종 23)에 죽주산성에서 몽고군을 물리친 내용은고려사등의 사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또 단국대학교의 김철웅 교수에 의하면(송문주와 죽주산성) 송문주 장군의 본명은 송언상이고 자()문주'라고 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송문주 장군의 뛰어남은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송문주 장군이라고 하지 않고 송대장군이라고 표현했으며 마을의 태평미륵도 송대장군을 위해서 조성된 것(혹은 송대장군의 누나를 위해서라고도 했다)이라고 했고, 오누이전설과 세마(洗馬)전설(성에 물이 부족해 쌀로 말을 목욕시켜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고,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지금도 인근마을에서 송문주 장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일제시대 신문기사에도 오누이전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현재 나와 있는 다른 자료나 마을사람들의 이야기에 비해 자세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송문주는 과부의 외아들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천재였는데 그의 누이 송희는 모친이 송문주를 편해하자 이를 시기하여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 내용은 송문주는 굽 놉은 나막신을 신고 당시 서울이었던 개성을 갔다가 오고 송희는 성을 쌓는데 누구든 지는 사람이 죽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송희는 성을 다 쌓고 남문(南門)을 달려고 하는데 송문주가 나막신 뒷굽이 떨어져 아직 오지 못하자 모친은 볶은 콩을 가져다가 송희를 주며 먹고 나서 문을 달라고 했고, 그 사이에 송문주가 돌아와 송희는 내기에서 지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그런데 송희가 자결할 때 푸른 새 한쌍이 목에서 나와 이상한 소리를 내고 날아간 일이 있고 송문주가 몽고병에게 패한 날도 이 새가 와서 똑같은 소리를 내었다고 하며 성에 남문이 없는 것도 이러한 연유라고 한다.(이 신문기사에서는 송문주가 몽고군에게 패해 자결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물리친 사실과 맞지 않다. 또 현재 마을 사람들은 콩이 아니라 팥죽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죽주산성을 봄에 가본 사람들은 죽주산성에 유난히 벚꽃나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연유가 일제시대 신문기사에 소개되어 있는데 일제시대 이죽 주재소의 일본 경찰이 이곳에 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벚나무 수천그루를 심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올해 107(음력 99)에도 이곳에서 송문주 장군 제향을 죽산면 주최로 거행할 예정이다.

태평미륵과 3층 석탑

태평미륵은 지금은 그냥 미륵이라고 부르지만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용화미륵이라고 불리웠고 태평미륵을 보호하고 있는 건물을 용화전이라고 불렀다.

이 용화전에는 일제시대까지도 굉장히 귀하고 만들기 힘들다는 청기와 2장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누군가가 걷어 갔다고 한다. 지금 있는 청기와는 그 후 가져다가 놓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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