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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의공파 소식       NOTICE BOARD

작성일 2013-11-05 (화) 09:50
ㆍ조회: 1277  
  임진왜란이후 선조38년 전라우수사 송안정 치계
임진 왜란이 끝난 1605년 당시 전라 우수사를 역임하신 송 안자 정자 조부님께서 당시 전라 우수영관할 고을, 진, 포구의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임금께 건의한 치계로서 원문과 국문을 함께 올려 봅니다
 
全羅右水使宋安廷馳啓曰: “臣冒受本職, 一年有半, 其於所管各鎭浦軍情, 飽聞而熟見, 則不可不思所以慰悅其心, 使不至於流散者, 而臨機應變之要, 亦未嘗不經於心。 蓋自丁酉以後, 防禦一事, 專以嶺南爲重, 而以臣所管各官浦戰船, 什之七八, 每歲入赴于嶺南者, 主將之令, 則區區得之之計雖切, 而何補哉? 大槪鎭浦戰船, 比各官, 其苦懸絶。 所以然者, 各官則地廣人衆, 故分爲四番, 輪回入赴于嶺南, 故雖每歲入赴於嶺南, 而亦不至於妻子流離之患。 惟鎭浦則不然, 瘡痍孑遺之土兵, 自二月至九月, 終歲入赴于嶺南, 而其妻子, 則飢寒號呼於空城之中, 于今十年, 其勢如此, 而不免於流離亦難矣。 雖有若干邊將, 撫摩而安集之, 亦非長久之理也。 或者謂以 ‘古今陣爲內地, 戰船雖寡, 可以把守。’ 臣竊以爲不知言者也。 想彼島夷, 慣識海路, 雖曰釜山, 與賊爲隣, 而倘有兇賊便道取疾, 捨釜山, 由三 直向湖右, 則曾不一夜, 可犯本境, 領此孤軍, 似螳拒轍。 凡此數者, 豈不寒心? 臣之愚計, 以各官各鎭之船, 分爲甲乙, 今年甲赴於嶺南; 乙赴於湖右, 明年乙赴於嶺南, 甲赴於湖右, 互相輪回, 仍以爲常, 則各鎭浦孑遺土兵、妻子之憂, 庶可少紓矣。 又令舟師, 郡邑各造防牌船一隻, 預備機械, 以待水將不虞之機, 則於嶺南, 頗有掎角之勢; 在湖右亦有應變之策。 明年春汛, 只隔數月, 朝廷以十分參商, 預爲定奪, 俾無噬臍莫及之患矣。” 啓下備邊司。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송안정(宋安廷)이 치계하기를,
“신이 무릅쓰고 본직을 받은 지 1년 반이 되었으므로 소관내의 각 진포(鎭浦)의 군정(軍情)에 대하여 익히 듣고 보아왔는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유산(流散)에 이르지 않게 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임기 응변의 중요성을 일찍이 마음에 두었었습니다.
대개 정유년 이후로 방어에 대한 한 가지 일은 오로지 영남(嶺南)을 중히 여겼으므로 신의 소관인 각 관포(官浦)의 전선(戰船)도 10분의 7∼8은 해마다 영남으로 부방시키는데 주장(主將)이 시키는 일이라 구구한 생각이 간절하지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대개 진포(鎭浦)의 전선은 각 고을에 비하여 그 고통이 현격합니다. 그 이유를 든다면 각 고을은 지역이 넓고 백성이 많아 네 번으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영남에 부방하기 때문에 해마다 영남에 부방하더라도 처자가 유산하는 환란에 이르지 않지만 진포는 그렇지 않아 상처입은 외로운 토병(土兵)이 2월부터 9월까지 해가 마치도록 영남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처자는 공성(空城)에서 굶주리며 울부짖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10년이나 되었습니다.
사세가 이와 같아 유리를 면하기는 또한 어렵습니다. 약간의 변장(邊將)이 무마해 주고 안집시키더라도 또한 장구한 계책은 아닙니다. 혹자는 고금도(古今島)의 진영(陣營)을 내지에 설치하면 전선(戰船)이 적어도 파수(把守)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신은 모르는 말이라고 여깁니다. 생각건대 섬 오랑캐는 해로(海路)를 익히 알고 있으므로 부산(釜山)이 적과 이웃이 된다고 하지만 혹 흉적이 편리하고 빠른 길을 택하여 부산을 버리고 삼도(三島)를 거쳐 호우(湖右)로 직행하면 하룻밤이 못되어 본경(本境)을 침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여기에서 거느리고 있는 고군(孤軍)은 마치 당랑(蟷螂)이 수레바퀴를 버티는 격입니다. 이 두어 가지 일이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신의 우매한 계책으로는 각 고을과 각진의 전선을 갑과 을로 나누어 금년에 갑은 영남으로 을은 호우(湖右)로 들여보내고 명년에는 을은 영남으로 갑은 호우로 들여보내어 서로 윤회하게 하고 그것을 일정한 제도로 만들면 각 진포의 외로운 토병과 처자들의 걱정을 조금은 풀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주사(舟師)의 군읍으로 하여금 각각 방패선(防牌船) 1척씩을 만들어 기계(機械)를 예비하게 하고 수장(水將)이 예측치 못할 변에 대비하게 하면 영남에 기각(掎角)의 형세가 이루어지게 되고 호우에는 또한 응변(應變)의 계책이 있게 됩니다.
명년 춘신(春汛)이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조정에서는 충분히 참작해 미리 조처함으로써 후회 막급의 환이 없게 하소서.”
하니,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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