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송정공 할아버지 시향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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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파 소식

2011년 송정공 할아버지 시향 소식

송은도 1 4564
 
2011. 04. 03. 11:00부터 경기 연천군 왕징면 동중리 산60 송정공파 선산에서 
송정공 파시조 시제가 있었다.
 
사진은 대종회 호석 총무님이 메일을 보내 주셨고...제가 이곳에 올립니다.
이번 시향은 어느 해 보다 제관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략 65명 가량이 참석하였다고 하니.. 적은 숫자만은 아닌 듯 합니다.
 
한편 이번 시향에 멀리 경북 안동의 교하공 문중에서 20여명이 참석하셨습니다. 교하공 종원들께 수고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새로 선출되신 재규 회장님에 대한 기대가 높아 이번 시향은 어느 때 보다 많은 제관이 참석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경기 연천 왕징면 동중리는 휴전선과 거의 맞다은 곳 입니다. 그래서 서울 북부지역에서도 차량으로 2시간 가까이를 달려야 갈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먼길 마다하지 않고 시향에 참석하신 어르신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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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차량을 세워놓고 입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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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까지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닌 듯 하나, 비탈진 경사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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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라오신 제관들이 제수품을 챙기며 시향을 준비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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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만난 친족들...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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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이 시작 되었습니다.
서령공 할아버지 앞에 자손들이 모여 정성껏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예를 다하여 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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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종회 송재규 회장님이 헌작하는 모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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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공 할아버지는 진천백 관향조 6代孫 이시며, 산소를 잃어버려 단비로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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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 할아버지 시향 모습 입니다.
송정공 할아버지는 묘소를 잃어버려 결성장씨 할머니 옆에 단비로 모셔져 있습니다.
단비 옆의 산소가 둘째 부인 결성장씨 할머니 입니다.
송정공의 장인이 결성장씨 시조 諱 하 선조 입니다.
 
 
송정공께서는 配 전의이씨와 後配 결성장씨를 두셨는데,
公의 첫째 부인께서 부사 목, 도사 익 2분의 아들을 두셨다.
큰 아들 부사공이 아들 諱 번, 諱 유  2분의 아들을 두셨고, 자손이 번창하는 듯 하였으나, 5代孫 (래손)에서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하고 끊겼다.
 
한편, 公의 後配 결성장씨 부인은 판결사공 諱 취,  諱 학, 諱 휘 3분의 아들을 두셨는데, 네째 다섯째 아드님은 슬하에 아들이 없고,
판결사공 할아버지의 자손이 크게 번창하여, 현재 진천송씨 집안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집안이 되었다.
 
한편, 송정공파의 경우 서령공과 송정공 조부의 산소를 잃었다.
그런데, 위 사실 때문에 우리 종친의 어느 원로 어르신이  
혹시, 현재의 송정공파는 본래 진천 집안의 후손이 아니거나 또는 본래 송정공의 후손이 아닌데, 족보를 만들며 끼어들기 한 집안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위 이야기는
평리공 집안의 경우 평리공 산소 뿐 아니라, 그 아들 3형제 전서공, 낭장공, 안성공 모두 산소가 있는데,
 
그 아우 서령공 집안의 경우 서령공은 물론이요, 그 아들 송정공 묘소가 없으니,
송정공을 족보에 들여쓰기 하였거나, 아니면 송정공은 후손이 없는데, 후손으로 끼어들기 하여 들어왔다는 이야기 이다.

그런데, 고려문과 방목에 보면 송정공 할아버지가 공민왕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父 림, 祖 전, 曾 지백 -鎭州人- 이라고 분명히 쓰여있다.
즉, 서령공과 송정공은 실존 인물 이다. 
 
우리 현존하는 최고 족보는 1673년 계축보 인데, 위 족보를 쓰신 분이 우곡공 입니다. 대과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신 분 이다.
그 이전에 1541년 신축보를 서교공 할아버지가 쓰셨는데.
이분 또한 모두 송정공 후손 이다.
 
그런데,,,위 분들이 뭐가 아쉬워서,,, 남의 집안 족보 써주며... 그 집안의 자손 끊어진 자리에 자기 이름 갖다 부쳐야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자기들끼리 족보 만들고 말지... 전서공, 낭장공, 안성공 집안 족보 써주고, 그 친적 중 자손 끊어진 자리에 자기 이름 부치기 하겠냐는 것이죠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 입니다.

서령공과 송정공의 산소를 잃어버린 이유를 설명 드립니다. 
자기네들 머리속에 떠오르는 데로 지어내지 말고,,,
족보 천천히 잘 살펴 보세요. 그럼 그 이유가 보입니다. 
 
현재 송정공의 장손이 도사공 후손들이온데,
본래 公의 장손은 경기 양주에 있는 부사공 후손들 있었습니다.
 
장남 부사공의 자손이 끊어졌는데... 일찍 자손이 끊어졌으면 둘째 집에서 산소를 모셨을 것이나... 송정공 6代孫 (곤손)까지 내려오다 자손이 끊어 집니다.
 
그런데, 그 사이 작은집들은 경기 양주에서 전북 익산, 완주, 강원 춘천, 경기 용인, 경북 안동, 충남 공주 등 전국 각지로 흩어집니다.
옛날 조선시대는 교통이 좋지 않다보니.. 서로 자주 연락도 못 하고, 조상님 산소 한번 찾아다니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경기 양주에서 산소를 관리했던 장손 집안이 끊어진 것입니다...
 
송정공의 장남 부사공 후손은 5代孫 諱 후송에서 자손이 끊기는데,
위 분이 대략 1550-60년대 전후에 출생하신 분 입니다.
위 분과 같은 항렬의 혈족들의 생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천송씨 최초 족보인 계축보는 1673에 쓰여졌지요
송정공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본래 경기 양주 일대에 세거 하였으나, 작은 아들 집안들이 전북 익산, 완주, 강원 춘천, 경기 용인, 충남 공주 등 전국으로 분가하고, 장남 집안이 경기 양주에 남아 있었으나, 자손이 끊어졌는데,
그 옛날 조선시대에 거리가 멀고 연락이 잘 되지 않다보니, 장손 집안의 자손이 끊겼으나 작은 집에서 이소식을 알지 못 하여 100년 이상을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1673년 계축보를 쓸 무렵에는 이미 경기 양주에 살던 장손 집안이 없어지다 보니 애석하게도 송정공 할아버지의 산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지요.

즉 송정공 할아버지의 산소를 잃어버렸던 이유는,
송정공의 큰 아들 집안이 일찍부터 자손이 끊겼디면... 둘째 집안에서 산소를 관리했을 것이나... 큰 집이 6대손까지 번창 하였으나, 그 사이 작은 집이 전국으로 분가 하였는데, 그 사이 장손 댁의 자손이 끊어진 것 입니다.  뒤늦게 족보를 만들면서. 장손댁의 자손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서령공과 송정공의 산소를 잃어 버린 이후 이지요.
 
한편 산중의 묘소는 10년만 관리하지 않아도,,, 산길이 없어지고, 묘소에 잡목이 우거져 잃어 버리지요.
 
무슨 근거를 두고 하는 이렇게 이야기이냐 할 것입니다.
도사공 익산문중에 모셔진 도사공 할아버지 단비를 보면...
본래 경기 양주에 세거 하였는데, 생원공 諱 옥이 전라도에 낙향 하였고,
1980년대 무렵 양주의 종묘가 군사용지로 수용되어, 현재 경기 연천군 동중리로 송정공의 단비를 이장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송정공파가 본래 경기 양주에 세거 하였고, 송정공의 큰 아들 부사공 후손들은 경기 양주에 세거하나, 둘째 아들 도사공, 세째 아들 판결사공 후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집니다.
그런데,,, 양주에 세거하는 송정공의 6대손이 자손이 끊어졌지요.
그런데, 작은 집들이 큰 집의 자손이 끊어진 것을 모르고 오랜 세월을 지났거나, 아니면, 경기 양주에서 이미 멀리 떨어져 나왔는데, 경기 양주까지 가서 매번 산소를 관리하더 다니기가 어려웠고, 한편 이장은 못 하고... 이런 상황에서 몇 십년 흘러버리니.. 그 산소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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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 모습
송정공의 재실이 없다네요. 그래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식사를 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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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을 마치고 귀가하는 모습 입니다.
올 시향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무사히 잘 귀가하시길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올 가을 진천 시향에서 뵙고,
내년 시향에도 뵈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시향제를 무사히 마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시향을 약속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1 Comments
hid 2023.07.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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