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仁園)을 가꾼 족제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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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仁園)을 가꾼 족제를 애도하며

송병혁 0 3322

  진천 송씨 정해보(丁亥譜)를 교정 보던 4년 전 영가조경(永嘉造景) 회사와 그의 호가 인원(仁園)임을 처음 확인을 했었다. 묻지 않고도 뜻을 익히 느끼면서 족보 원고에 써넣었다.

  영가(永嘉)는 안동의 옛 이름 중의 하나에서 따왔고, 조경사업은 그가 농림고등학교를 나와서 일생 화훼(花卉)에 전문인이 되었으며, 자수성가로 설립하여 궤도에 올려놓은 그의 평생사업체가 그 회사이다. 자신의 일을 지극히 사랑하고 좋아해서 아들도 그 전공을 대학에서 교육시키고는 대를 이어 자기의 사업을 잇게했을 정도였으니까 안동과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알려져 있다.

  “어진 동산,” 인원(仁園)은 어떻게 붙여진 호인지는 몰어 볼 겨를조차 없었네. 참으로 깊은 뜻이 포함되어있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일전에 그가 죽고 나서야 왜 한 번 그런 대화를 못했던 가고 안타깝다. 그의 성품조차 그 속에 배어 있어서 아주 적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내 한 번 제대로 이렇게 말해 주지 못한 채 아주 떠나버려서 더욱 서운타.

  “인원, 자네는 그 이름만큼이나 인자한 삶과 조경전문인이었네!” 내 제문이라도 하나 지어서 옛날 같으면 막가는 길에 그가 한 때 많이 즐겼던 술 한 잔 부으면서 노제(路祭)라도 지내주었었으면.

  비교적 자그마한 키에 동굴난작하고 밤톨 같이 반듯한 인원의 몰골은 어려서부터 하얀 피부에 귀공자 같은 만년 동안(童顔)의 소유자였다. 귀여운 미소를 늘 지니고 재미있게 놀리며 농담하기는 즐겨했지만 누구하고 도무지 맞닥뜨려 싸움 한 번 걸지 않는 유순한 성품이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한 것처럼 그의 인품 또한 인자하였으니, “인원(仁園)이 얼마나 어울리는 아호(雅號)인가!”

  맹자(孟子)를 읽으면 아름다운 동산을 꾸미는 왕(王)에게 “사람이 먼저 인(仁)하지 않고는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가 없다”는 설명을 볼 수 있다. 그가 일생 만들어주고 꾸며주었을 많은 조경사업이 원예와 정원들 또한 그의 호처럼 ‘어진 동산, 인원(仁園)의 정신이 배어있을 것이다.

  2년 남진 지나갔지만 진천 송씨 종보(宗報) 71호를 책자로 처음 편집할 때 뒷 표지 빈 곳에 작은 광고를 싣기로 했을 때 인원(仁園)이 먼저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 “자네 회사 광고 하나 내게.” 다짜고짜 부탁을 했고, 되묻지도 않으면서 그러마고 응낙했던 그 친구가 지난 주간에 타계했다.  내 14촌 족제(族弟) 인원(仁園 炳台)이다. 광고료라기보다는 종보 찬조금으로 여기고 우선 5만원 만 송금하라 일렀더니 두 말 없이 그렇게 실행했다.

  또 필요하면 연락하라던 그가 이젠 고인(故人)이 되었으니. 내 전에 마뜰에 가꾸던 그의 수목원(樹木園)에도 잠깐 들른 적이 있었고, 후에 1만5천 평의 동산에다 크게 조성한 나무 농장에는 두 번이나 친구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으며 파티를 가졌었는데. 이제는 그의 영가농원 광고가 찍힌 종보 71호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인원을 그리워할 뿐이다.

  그가 나무 키우는 사랑과 즐거움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나! 온갖 과목(果木)과 조경수가 산언덕을 뒤덮고 별장처럼 지은 그 집에서 인원(仁園)의 즐거움을 누리며 며칠 지내고 싶다고까지 내가 말을 했고, 그는 기꺼이 오라고 언제든지 좋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이야. 인원이여, 못다 누린 ‘어진 동산’을 그렇게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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