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과 후천적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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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과 후천적 노력

송병혁 0 2941

  사람의 능력은 타고나는가, 노력으로 성취되는가? 전자를 선천적(先天的)이라 하고 후자를 후천적이라 한다. 이는 교육학적 논제이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이슈(issue)이다.

  고려의 뛰어난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백운 이규보(白雲 李奎報/ 1168-1241)가 그에 대한 간단한 논변을 남겼다. 동문선(東門選) 102권에 있다. “사마온공의 독을 깨뜨린 그림 후에 관한 글[書司馬溫公擊瓮圖後]이 그것이다. “옛사람들이 말했다, 사마온공은 어린 아이 때부터 사람을 살리는 수단이 있었다(自爲兒 擊瓮時 已有活人手段).”

  그는 네 황제를 섬기며 분발하였고,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제거하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스린 송나라의 사직(社稷)을 지킨 신하가 되었다. 이는 각고(刻苦)하고 단지 실습하여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젖내 나는 중에 이미 나타났으니 진실로 하늘에서 받은 천성이다(此非刻勵習熟而爲只, 其漸已見於乳臭中, 固受之天者).

  그렇게 도입하면서 그는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로 반대 이론을 언급한다.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 그가 재주를 실천하므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규보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했다. 역사적인 예(例)로서 공자(孔子)가 어려서 제기(祭器)를 가지고 장난하기를 즐겨하더니 커서 성자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또 자기 자신의 경우에도 어려서부터 빨리 달리는 말을 무서워했는데, 벼슬길에서도 명령을 받아서 출장가야 할 때면 부득이 하여 역참(驛站)에서 가장 노둔한 말을 스스로 골라서 타고 다닐 정도였다고 실토한다. 또한 그가 두 살 때에 책을 짚어가면서 읽는 흉내를 즐겨했다는 부모의 말을 들었으니 그로서 유학자가 되어서 자기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논리다. 백운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까지 지냈고 우리나라 문학과 역사에 공헌한 바도 크다.

  이는 경험을 중요시했던 이규보 자신을 염두에 둔 얘기로 들린다. 이미 9살 때 백운도 신동(神童)이란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니까. 물론 어린 사마광(司馬光)도 큰 물독에 빠진 동료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일곱 살의 어린 나이지만 타고난 기지(機智)가 있어서 급박한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큰 돌을 찾아서 독을 깨뜨린 순발력이 있었다는 논변이다. 그런 그림은 고려시대에 백운은 물론 공부한 사람들이 보아서 생생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이규보는 천성적인 능력은 타고났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타고난 소질이 있고 유전적으로 아이큐가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지능지수가 높고 타고난 재능이 있는 자만이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음을 우리가 종종 볼 수도 있다.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방법으로 연구한 전문적인 논문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탐지한 바는 없다. 그러나 이규보의 논변만 가지고 보더라도 그가 예로 들었던 사마광이 순발력을 발휘한 기지가 일찍이 있었지만 그의 역사를 조금 더듬어보았더니 일생 그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결국 좋은 천품이 필요하겠지만 그 위에 끊임없는 습작과 각고를 통하여 그 천성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어려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천재들을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일찍이 보았지만 실상 그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많았음도 사례연구(Case study)에서 보았다. 사마광도 이규보도 노력한 사람들이다.

  이규보가 그의 부모에게 들은 바는 우리도 주변에서 돌잔치에서 흔히 보는 현상과 비슷한 이야기다. 돌상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올려놓고 돌쟁이로 하여금 집게하고 그 아이의 장래를 점치려는데 붓을 잡으면 선비나 학자가 될 것이라는 예견이 반드시 맞겠는가? 책을 짚어가면서 글읽는 흉내를 낸 것도 그것만으로는 유학자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계속된 학업과 부단한 노력이 더하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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