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보는 안성공 파보 인가 아니면 대동보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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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보는 안성공 파보 인가 아니면 대동보 인가

송은도 0 4078
 
족보는 조상님들이 살아온 집안의 역사이고, 종보는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 집안의 얼굴이다. 
 
그런데, 간혹 족보와 종보를 쓰며 아주 조그만한 것을 실수하여 큰 오류를 남길때도 있는가 하면, 제대로 한 번 확인해 보지 않고 자기 생각나는 데로 글을 써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정보를 족보와 종보에 실어 올리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족보와 종보를 쓰는 분들은 대체로 그 집안의 덕망있는 어른이요. 원로이다. 그런데, 그런분들 조차 실수를 계속하니 참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글에서 이미 말씀 드렸는데 간단히 재차 설명하면,
우리 족보에도 世와 代 그리고 世孫과 代孫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여,
6세를 6세손 또는 7세을 7세손... 8세를 8세손 이렇게 표기해 놓았다.
즉 항렬을 모두 하나씩 낮추어 버렸다.
이로써 우리 진천송씨는 2007년 정해보로 인해 代와 世도 구별 못 하는 사람들 이라는 멍애를 평생 죽을때까지 짊어지고...손가락질 받게 되었다. 
 
2010년 춘계 제71호 종보를 보면
공주공 13세손 -0규- 공주공은 圭로부터 12대조 입니다... 라고 쓰여있다.
그런데 사실은 12세손, 12대조 관계 라고 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카페와 홈페이지에 수 차례 위글을 쓰는 이유가,
대체로 연세드신 분들은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험 때문에,,, 그 동안 습득한 지식 중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이것을 쉽게 바로 잡지 못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것이 억지를 부지는 것인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을때가 간혹있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한다. 런데 이런 부분까지는 밝혀둘 수 없고,
 
잠시 종보를 살펴보면
2010년 추계 제72호 종보에도 신중을 기하지 않아,,오류를 범한 부분이 있다.
1789년 기유보를 기묘보라고 소개하였다.
물론 앞 부분 글에는 기유보로 하였는데., 뒷 부분에서 잠깐 기묘보로 하였으니, 오타로 보인다.
 
한편 청산 주성면 諱 호길 이라는 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위 분이 부사직공 諱 분 할아버지 자손이 아니고, 회양공 諱 반 할아버지 후손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위 글을 쓰신 분은 諱 호길 할아버지의 문중 직계 후손이다. 
족보 한 번 펼쳐보거나, 이번에 나누워 준 cd 한번 돌려보면 금방 알수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기 생각나는 데로 종보에 올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안의 내력을 소개하는 종보에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이다.
 
 
한편... 1789년에 쓰여진 기유보를 안성공파보로 소개하고 있다.  
위 이야기는 참의공 집안이 본래 上係失傳 인데, 자손이 없는 군수공 아래 부치며, 그 사이 <진재-원-영원>3대를 끼워넣기 하였다가,,,
최근에 <원-영원>을 삭제하여 2대 상향했다고 몇 몇 사람이 지적하며 그 잘못을 따지자...
 
참의공 집안과 대종회 종보 편집자 들이... 그에 답을 하며...
1789년 기유보에 3대를 끼워넣기 한 사실이 있는데, 기유보가 안성공 파보에 불과하여 정확도가 떨어져 믿을 수 없고. 따라서 대수를 상향하기 위해 고의로 <원-영원>을 삭제한 것이 아니다는 답변으로 종보에 실었던 내용이다.
  
물론,지금 3대를 끼워넣었냐, 2대를 삭제했느냐는 이야기가 아니며... 기유보에 대한 설명이다.
 
기유보는 1789년 안성공 10代孫 여진공 諱 주세 조부가 발문을 쓰셨고,
진천 확교지방에서 만들어져 일명 확교보로 불린다.
여진공은 감역공 諱 환주의 후손으로 양주 문중으로 보인다.
따라서 안성공파 후손이다.. 그렇다고 기유보가 안성공 파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유보가 만들어지고, 10년만인 1799년 기미보가 쓰여져, 충숙공 우산종중에서 기유보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기미보를 무료로 나누워주고 기유보는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데, 어렸을 때 위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현재 기유보가 상당히 희귀하다.
 
그러다 보니 기유보를 열람해 본 사람이 별로없을 듯 하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내용을 자세히 들여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면 안성공파보로 오인할 수 있다.
이 기유보가 대동보 이면서도 족보 앞 부분의 묘도에 안성공 집안 묘소 위치만 그려 놓았다... 그래서 안성공 파보로 보이게 되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도사공 익산문중을 기준으로,
1673년 계축보는 진천백 관향조 16代孫 諱 설은 그 손자까지 기록하고,
그 아우 諱 범, 諱 화, 諱 규는 아직 자손이 없다...
그런데, 1789년 기유보에는 위 분들의 증손자까지 기록되어 있다.
 
즉, 계축보는 16대손 - 18대손까지만 기록되어 있으나,
110년 뒤에 나온 기유보는 세월이 더 흘러서 인지  계축보에는 아직 없었던, 후손들인 증손자 (진천백 19대손)까지 추가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안성공파만 수록한 파보가 아니라... 다른 집안도 수록한 대동보 이다.

그리고, 계축보에는 조상 묘소 위치를 기록하지 않은 분이 많은데,
기유보부터 우리 족보는 조상 묘소 위치를 대부분 기록하고 있다.
기유보는, 안성공파만 묘소 위치를 써놓은 것이 아니고, 다른 집안 모두 묘소 위치를 써놓았다.

만약 다른 집안이 참여하지 않은 안성공 파보이면 계축보에 묘소 위치가 없는 다른 집안의 묘소 위치까지 밝혀둘 수 없다...  
 
그런데,기유보를 안성공파보라 정확도가 떨어져 믿을수 없다...라고 종보에 올린 것은 참의공 집안이 기유보에서 참의공을 군수공의 현손자로 잇으며 3대를 끼워넣었는데, 훗날 1975년 을묘보에 2대 삭제 하였고 이 문제가 뒤늦게 비난을 받자,
 
현재 참의공 집안이 자신들의 주장에 합리성을 더하기 위해 기유보를 평가절하하고,,, 일개 집안 파보라 그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변명하며.. 종보에 안성공 파보라고 소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데 족보와 종보를 자꾸 그런식으로 꾸며서 쓰면 않됩니다.
900년 전통을 지켜온 진천송씨 집안인데 자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종보에 잘못된 내용을 계속 실으면 않되겠지요.
 
어떤 사람이 우리 집 족보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다고 속을 사람도 없습니다.
참의공 집안이 1789년 기유보에서 3대 투탁 하였고, 1975년 을묘보에서 2대 깍았는데요... 그 이유에 대하여 기유보는 안성공 파보라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라는 식으로 종보에 써놓으면... 뭐 모르는 사람들 그 소리를 믿겠지요.
 
그런데, 참의공 계보 때문에 우리 종보는 또 한번 거짓말 한 것입니다. 
기유보는 전서공, 낭장공, 안성공, 송정공, 참의공 모두 참여한 대동보 입니다. 다만, 안성공 집안에서 주도하여 만들었을 뿐 입니다.
 
1799년 기미보와 1859년 후기미보가 모든 집안이 참여한 대동보 인데...충숙공 우산종중에서 주도했던 것 처럼...
기유보는 안성공 집안에서 주도한 대동보 이지... 안성공파보가 아닙니다.
 
이쯤에서 부탁 드립니다.
그냥 차라리 참의공은 上係失傳 하여 본래 별보에 있었는데, 훗날 세보로 옮긴 사실을 인정하며 앞으로 족보에 그 내용을 사실대로 밝혀두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 됩니다.
계축보가 쓰여지기 이전 유명인사로 諱 안정, 諱 극현 조부가 있고,
諱 안정 조부는 무관으로 임진왜란의 공적이 조선실록에도 기록되 있으며,
한편 諱 극현 조부가 대과에 급제하여 정랑 벼슬을 지낸 분 인데,
정랑공이 대과에 급제할 당시 봉미에 진천송씨라고 쓰셨으니 진천송씨 자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족보에 사실대로 밝혀 <참의공은 상계를 잃었고, 군수공이 아들이 없어 시향이 끊겼다. 이에 참의공을 군수공 아래 系子 또는 系孫 하였다.  본래 구보에 군수공은 无后 이고, 참의공은 上係失傳 인데, 기유보에 잠시 참의공을 현손으로 하였으나, 대수가 맞지 않아 1975년 을묘보에 손자로 하였고, 참의공 후손들이 현재 군수공을 친 부모 처럼 모시고 있다... 이렇게 라도 사실대로 기록하기시 바랍니다.
 
그 체면 때문에, 사실을 감추고 변명을 하다 보니... 자꾸 족보와 종보에 거짓말만 늘어나지 않나요?
 
얼마전 참의공 파종회장이 앞으로 진천송씨 행사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고 들었다. 그것이야 참의공 집안에서 결정할 문제인데..

지금 족보문제를 거론하는 몇 몇 사람들의 주된 목소리는
참의공을 쫓아내 가평송씨로 독립하라는 것이 아니다.
한편 군수공에서 떨어져... 옛날 처럼 별보로 돌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전통은 적자도 자식이요, 양자도 자식이요, 입양자도 자식 이다.
한편,, 오늘 날에는 적서구별이 없어져, 서자도 적자와 동등한 세상이 되었다.
 
본래 참의공 집안은 본래 진천송씨가 맞은데, 상계를 잃었으므로...
군수공의 친자는 아니고, 系子 중 양자로 보아야 할텐데.
생가를 모르니,,, 정확히 보자면 계자 중 입양자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럼.. 이런 사실을 자꾸 숨기고 변명하기 보다는...
현재의 족보에서 군수공 아래 참의공을 자손으로 잇었다는 내용을 사실대로 간략하게 기록하며,
가평의 선산에 군수공의 단비를 모시고... 군수공 시향을 모시며..
.
족보와 단비에 본래 참의공운 상계를 실전 하여 그 후손들이 애석하였다,,, 그런데 마침 아들이 없어 시향이 끊어진 조상님이 있어,,, 조상 잃은 서러움을 극복하고, 시향 끊어진 조상을 봉향하고자 군수공 아래 참의공 후손을 잇어, 현재 군수공을 참의공 후손들이 부모처럼 모시고 있다... 차라리 이렇게 써놓는 것이 훨씬 보기 좋지 않을까...
 
아무리 오래된 옛 기록 이라고 하지만.. 그 기록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전래되고 있는데, 느닷없이 계보를 고치고... 그것이 들통날 때 마다,, 족보와 종보에 자꾸 변명을 하다보니... 그때마다 우리 족보와 종보에 허위사실만 늘어나, 계속 이상해 지고 있다.
 
진천송씨 족보와 종보에 계속 거짓말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참의공 집안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올해도 종보를 만든다고 들었다...
올해는 과연 종보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굼합니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충분히 내용을 고찰하여 정확한 내용을 수록하였으면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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