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0월18일 안성자치신문 <송문주 장군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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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0월18일 안성자치신문 &lt;송문주 장군 제향&gt;

송은도 0 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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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주 대장군 제향에 참여하고

[2008-10-18 오후 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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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병혁 진천 송씨 역사연구가

전통 깊은 죽산면의 중양절 제향이 올해에도 10월 2일 진지하게 거행되었다. 40여 명의 제관은 771년전 고려시대 송문주 대장군이 죽주산성을 방어한 그의 전공을 엄숙히 기렸다.  진천 송가의 한 사람으로 나는 그의 방손(傍孫)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영광의 기회를 얻어서 참으로 감명이 깊었다. 이날 제향에서는 홀기도 잘 읽었고, 축문과 제물도 정갈하게 준비되었고 관복과 같은 예복까지 갖추었다.  지금은 죽산면이 된 죽주의 깊은 전통이 이번에도 훌륭히 재현되었다.



죽주 산성은 역사도 길지만 실제 전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사실을 역사에서 잘 볼 수가 있다. 송 장군이 몽골군을 크게 물리친 것으로부터 임진왜란 때에 한 때는 빼앗긴 적이 있었지만 실전에서 여기가 많이 활용되었다. 임진란 이후에도 경기관찰사가 묘당(廟堂)에 보낸 편지 문을 찾아보니 죽주 산성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었으며 또 보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에도 대신들이 와서 송 장군의 사당에 제사를 올렸고, 조선후기에는 송문주 사당에 묘비까지 새겨서 세웠던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죽주산성은 아직도 보수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죽산 면민들의 애향심과 전통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여실이 나타나고 있었다. 새로 나무를 심고 올라가는 길가에는 칸나가 아름답게 이 가을까지 피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익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죽주산성을 보호하려는 자치회합이 조직되어서 자원봉사로 그렇게 미화하고 있다고 한다.  예부터 관가에서 중양절 제향을 송 장군 사당에서 올려오지만, 한편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주민 스스로도 또 한 번 제사를 더 올린다는 사실이다.  중양절 제향 외에 상달인 음력 10월 중에 따로 날을 잡아서 송 장군의 사당에서 죽산의 주민을 축복하는 제사를 지금도 해마다 지낸다.



실로 죽주산성과 송 문주 장군의 역사는 죽산 면의 긴 역사와 함께 이어온 전통일 뿐만 아니라 죽산 주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에 있다.  전에 새겼던 송 장군 사당의 비문에 의하면 죽주의 주민들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 “송문주 장군이 없었다면 우리 죽주의 조상들이 몽골군에게 초토화 되었을 것이고, 우리 조상이 그 때 살아남지 못했다면 후손인 우리도 물론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은혜 때문에 우리는 송 장군에게 해마다 제사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송문주 장군은 진천 송 씨로서, 죽산의 이웃 성읍인 충청북도 진천이 그의 고향이었다.  그가 몽골군과 싸울 때 귀주대첩에서 전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죽주산성의 방호별감으로 파견된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의 고향지방이기 때문이었다. 죽주와 진주(진천의 고려 때의 이름)가 인근이니까. 송문주는 후에 문관으로도 벼슬을 받았는데 송언상(宋彦祥)이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옛 사람들이 자나 호를 사용하고 여러 개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의 형 송언기(宋彦琦)는 어사(御使)로서 외교가의 직무를 띠고 칭기즈칸 몽골제국의 새 수도였던 카라코룸까지 세 번이나 고비 사막을 넘어서 먼 길을 가서 국교를 맺고 전쟁을 멈추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형제의 내역은 고려사절요에도 역력히 나타나지만, 그들의 아버지 송순(宋恂) 역시 대신으로 전국적으로 추앙받은 인물이었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있다.



우리나라가 근래에 향토문화 역사발굴을 강조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죽주산성은 안성의 보물이다.  그 역사적 가치에 있어서도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지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유적지가 발전 보수될 것으로 믿는다. 위치상 죽주산성은 호남과 영남, 충청도와 강원도를 잇는 요충지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방어요새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다. 그러면서 죽주는 경기도에 속하여서 경기도관찰사의 관할에 있었다. 아름다운 전통이 죽산 면과 안성시의 노력으로 미래에 점점 더 빛날 것으로 기대된다. 송문주 대장군의 애국심과 애향심이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기에 더욱 그러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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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안성신문(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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