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기행(1278)-장성 취미대(翠薇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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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기행(1278)-장성 취미대(翠薇臺)

송창환 0 2304

南道 정자기행(1278)-장성 취미대(翠薇臺)
뉴스일자: 2014년08월22일 23시35분

전남 장성군 취미대(翠薇臺), 서삼면(西三面) 장산리 외연(外硯)마을에 있었다. 마을 뒷산 정상에 있었던 석대(石臺)로 마을에 세거하였던 진천 송씨들이 대대로 시가(詩歌)를 읊고 유유자적(宋氏世傳肅詠之所)했던 장소로 사용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은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리에 대신 무덤이 있다.

다만 장성 출신 연체당(聯棣堂)  반응호(潘應濩, 1666 현종 7∼1739 영조 15)가 취미대(翠薇臺吟贈宋友輝世)에서 읊은 시가 연체당유고(聯棣堂遺稿)에 전하고 있어 지어진 시기를 가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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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대(臺)는 순수한 우리말로는 이런 곳을 너럭바위라고 하며, 역시 펑퍼짐한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우리나라 지명에는 ‘대(臺)’를 붙여 바위의 생김새를 표현한 곳이 많다.  바위 꼭대기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관을 관망하기 좋은 계곡에 있는 평평한 반석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양쪽에서 흘러오는 내가 대(臺) 아래에서 합쳐지고 팔경(八景)을 갖추었으며 대(臺) 위의 반송(盤松)이 하늘을 버티고 해를 가려 경관이 주변에서 제일 빼어나다는 평가를 일찍부터 받았다.

1812년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때 본관  진천인 송구(宋耉)의 후손인 송창(宋昶)이 매일 밤 대 위에서 축천문(祝天文)을 만들어 기원해 부사가 조정에 보고까지 하였다.  송구(宋耉)는 가감역관(假監役官)을 역임하고, 선조조에 선무원종1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대 위의 반송은 비바람에도 끄떡 없어 석송(石松)이라 불렀는데 송영순(宋榮淳)이 자신의 호로 삼고 전라남도 화순 출신. 참봉벼슬을 하였으므로 기참봉으로 불렀던 조선 말기의 항일 의병장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 헌종 12∼1916)이 석송기(石松記)를 썼다.

송창(宋昶)이 시가 장성읍지에 남아 있다, 

雨後春巒盡翠眉 插花臨水杳佳期 薄言採採芙蓉色 爲美人裳欲贈之

翠微臺在西三面外硯里舊硯湖祠後突立一小岡鰕鎭大野上有石臺呑兩川俱八景臺上有盤松撑天 作柱蔽日爲蓋其勝狀冠於全境爲宋氏世傳肅詠之所慕庵宋昶有詩 且多前輩題詠菴値壬申西亂作祝天文社稷不幸生民不幸西賊作亂驚 宸聽天特性顧國必速敗滅蒼蒼高遠視聽卑近無聲無臭純乎一眞窕窕冥冥是保是佑不待時曰逮敗速滅)每夜祝于此臺其時府使及備邊使報啓中且以翠微臺祝天文觀之其忠智竝可推驗云云曾年該盤松爲風雨所拔故石松宋榮淳寓意於此自爲號松沙奇宇萬著石松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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