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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도 0 2870
답변 감사 합니다.
제가 위 글을 쓸때 유하당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 입니다.
이 분이 고흥유씨 양정공파 (완주군 비봉면 종중) 후손으로 보이는데요.
이 분의 글에서 우주골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삼국사기 지리, 고려사 지리, 세종실록 지리, 동국여지승람 등을 참고하여 정리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분의 글에서 우주현의 치소가 익산 IC 나들목 인근 이라는 추정된다는 글을 본 듯 합니다.
그런데,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옛 부터 중앙 뿐 아니라 지방에도 관청이 있고, 서울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어 수령이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현(縣)도 있었습니다

이를 속현이라 하고 임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서 지리지에서 우주현을 보면 이미 고려 현종 (1018년)때 우주현은 현감이 파견되지 않는 전주목의 임내 (任內)로 확인됩니다.
이후 충렬왕 시기에 익산군에 통합되어 익주군이 됩니다. 이것은 현(縣)의 명칭은 있으나, 현감이 없는 속현(屬縣)에 해당하는 것 입니다.
조선 태종9년 (서기 1409)에는 우주현이라는 자체가 없어지고, 3개면으로 나뉘어 전주부에 직속화 됩니다.
즉, 삼국시대 백제나 통일신라까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고려 초 부터 우주현은 명칭만 있고, 관청이 없는 속현(屬縣)에 해당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실제 조선실록을 찾아보면 우주현의 인근 함열현의 경우 현감이 확인되나, 우주 현감은 없습니다.
반면, 신라 경덕왕 757년 지방관제를 중국식으로 개편하며, 백제의 금마저군을 금마군으로 개칭하고, 백제의 우소저현을 우주현으로 개칭하며, 우주현을 금마군의 영현(領縣)으로 합니다.
한편 신라는 주에 도독, 군에 태수, 현에 현령을 파견하는데, 전국의 현은 293개 이고, 삼국사기 잡지 직관지에 의하면 현령의 정원은 201명으로 확인 됩니다. 물론 태수와 현령의 중간 관리자급인 소수(少守)의 정원이 85명으로 되어 있어서, 경덕왕 당시 우주현은 관청과 지방관이 파견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신라 때도 모든 현에 현감이나 현령이 파견되지 않은 것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익산 IC 나들목에서 우주현의 치소를 찾는다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데, 너무 근거가 미약하지 않나 보입니다.
기록을 살펴볼 때 고려 초 현종 (1018년) 이후에 이미 우주현은 관청이 없어졌고, 그나마 있었다면 그 이전 입니다.

이 문제가 예전에 우주황씨 집안에서 자신의 본관 우주골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사실이 있습니다. 나름 뜻있는 분들이 개인 돈 쓰며 시간내서 노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분들이 첫 번째로 우주현의 관청이 있는 치소 찾기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결론은 못 찾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유는 이미 고려 초기에 없어진 현의 관청을 국책 사업도 아닌 일반인의 노력으로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분들이 아마 우주현은 주현이 아니고 속현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진행한 것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리고 설령 우주현이 신라때는 지방관이 파견된 관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익산 IC 나들목이 치소가 되기에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우주현의 주변 현을 살펴보면 금마군에 옥야현 (현 익산시 춘포면), 야산현 (현 익산시 낭산면), 우주현 (현 완주군의 북쪽지방), 전주의 영현으로 두성현 (현 완주군 이서면), 금구현 (현 김제시 금구면), 고산현 (현 완주군 비봉면 또는 고산면) 이렇게 되는데요.
위에서 보면 고산현이 문제가 됩니다. 통일 신라 때는 전주(全州)이고, 백제 때는 완산(完山)입니다. 완산은 현 완주(完州)의 옛 지명 입니다.
한편 현재도 완주군에 고산면이 있는데, 그럼 삼국사기 지리편에 있는 고산(高山)현의 치소를 현재 완주군 고산면으로 볼 수 있으나, 저 고산현의 치소는 지금의 완주군 비봉면 입니다.
완주군 고산면의 지명이 고산으로 바뀐 것은 최근이고, 조선 중기만 하더라도 비봉면을 고산이라 불렀고, 그곳에 지금도 고산(高山)이 있습니다.
나들목 부근에 우주현의 치소가 있었다면, 우주현 관청이 고산현쪽에 너무 붙는 반면 지금의 전주시내 구간에 공동화 지역이 너무 넓습니다.
또한 나들목 부근이 지금은 평야이나, 예전에는 그곳에 금강 지류가 있어서, 서해에서 들어온 바닷물이 나들목까지 들어왔는데, 특히 장마시기에는 자주 물이 범람하는 지역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곳에 고대시절 치소가 있었다고 한다는 것은 무리한 추측아닐까 생각 합니다.

우주황씨들도 우주현의 관청이 있었던 치소를 찾지 못 했습니다.
이유는 그분들이 우주현은 고려 초기부터 현감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 하고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것 입니다.
이 후 익산 IC 부근이 우주현의 관청이 있던 치소가 아니냐 라는 추측이 있었는데요.
이는 우북면, 우동면, 우서면의 위치를 고증한 후, 가장 가운데를 지목한 것 인데요. 사실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지역이 지금은 평야지대이나, 예전에는 금강 지류가 흘러 서해 바닷물이 직접 유입된 곳이고, 심지어 장마철 범람지역 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 또한 가능성 없다는 의견이 더 높습니다.

제가 이를 쓰는 이유가 이번에 대종회에서 문헌록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혹시라도 익산 IC 부근에 우주현의 관청이 있었다고 쓸까봐서 그렇습니다.
저것 입증하려면 고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야 못 찾고, 삼국시대 통일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진짜 그곳이 맞는지 아닌지 겨우 가늠할 수 있는데, 그것 마저도 불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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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 우주현의 유래 (2015-12-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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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사세손] 전북 완주군 봉동읍 지명 유래 (2015-05-02 00:44)

우주(紆州)는 전주북부(全州北部)와 익산(益山)의 금마현(金馬縣) 일부지역에 위치한
지금의 완주군(完州郡)의 삼례읍(三禮邑)의 후정,해전,어전과 봉동읍(鳳東邑) 대부분과 익산시(益山市)왕궁면(王宮面)과 춘포면(春浦面) 일부분을 포함한 지역으로 이곳을 우주현 (紆州縣)이라고 했으며, 우주현(紆州縣)은 우동면(紆東面), 우서면(紆西面),우북면(紆北面)으로 이루어 졌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주부관하(全州府管下)에 우동(紆東), 우서(紆西),우북(紆北)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때
제석면(帝石面)과 우북면(紆北面)을 합하여 왕궁면(王宮面)이 되고,
우동면(紆東面)과 봉상면(翔面)합하여 봉동면(鳳東面)이 되었으며,
우서면(紆西面)은 삼례면(參禮面)이 되었다. - (참례면 아님. 삼례면으로 읽음) 

따라서 옛 족보에 묘(墓)의 위치가 제석면이나 우북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면, 현재 왕궁면에 해당하며, 우동면이나 봉상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면, 현재의 봉동읍이 맞다.
지명이 바뀐 것으로 이장한 묘가 아닙니다.

 

* 조문(助文)

- 우주현의 유래 -

 삼국시대에 백제의 우소저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757년(경덕왕 16)에 우주현으로 개칭, 금마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전주에 병합되어 조선시대에도 전주의 우동면·우북면·우서면을 이루고 있었다. 1906년 월경지정리로 우북면이 익산군으로 이관되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 때 이루어진 면의 통합으로 전주군의 우동면은 봉상면과 합해 봉동면으로, 우서면은 창덕면과 합해 삼례면으로, 익산군 우북면은 제석면과 합해 익산군 왕궁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6년에 삼례면, 1973년에 봉동면은 읍으로 승격되었다. - 백과사전 참조
 

 더부러 우주현은 우주황씨의 본관이며 우리 진천 송문과 오랜 선대부터 혼인관계로 맺어진 가문이고, 우주현의 현청소제지는 송정공파 우산정사 동남쪽 500미터 지점인 현제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 부근으로 폐촌이된 구터(舊基)로 추정됨. - 송정공파 오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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