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터지는 소리

홈 > 게시판 (公告欄)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봄 터지는 소리

송병혁 0 3106

b5bfb8f1.jpg

             (1월의 동백과 자목련/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늘이 북녘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인데, 봄 터지는 소리는 이미 목련꽃에서 들었다. 우리네 남녘 동백은 일찍이 구랍(舊臘)부터 핀다지만 점차 북쪽으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려야 하지 않나. 한국에서 가장 북쪽에 군락(群落)을 이루기는 산다(山茶)라고도 하는 그 꽃이 고창의 선운사까지인데, 거긴 4월 중순이나 되어야 핀다니까.

  샌프란시스코에선 동백 꽃송이가 동강동강 속절없이 벌써 떨어지고도 있었던. 지난달 끝자락에 거기 동백(camellia)이 빨갛게 곱던 봄이 한 주간이나마 즐길 수가 있었다. 백목련 청아하고 자목련(紫木蓮)의 고아한 자태를 감상하면서 올봄은 일찍이 맛을 보았다. 서울의 목련은 언제 다시 즐기려나?

  자목련 꽃봉오리 봄을 터뜨리는 소리 오클랜드(Oakland, CA)에서 역력히 들었지. 노루가죽 같은 껍질을 깨뜨리면서 힘차게 밀치고 나오는 꽃 머리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새삼 신기해서 한참이나 서서 올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우! 타다닥 탁, 겨울의 허물을 찢어내는 소리 내 귀청을 마구 때리는 것 같았다.

  다매(多梅)라는 동백은 피고지고, 목련(木蓮)의 우아한 자태 이미 봄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 겨울의 서울이 몹시도 춥고 길어서 내가 기다리는 봄의 간절함이 더했기 때문이리라. 신춘(新春)이 하도 절실하여서 1월 말의 캘리포니아가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서 영하(零下)의 추위를 등지고 태평양을 건넜는데, 시차(時差)로 인하여 하루를 벌게 된 첫날부터 푸르른 세상은 신선함으로 맞아주었다. 포근한 햇빛에 화사한 꽃들이 날 위해 미리 봄을 준비해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태평양 게가 제철을 만난 모양일세. 피셔맨스 와프(Fishermen’s Wharfs)에는 온 세상에서 관광객들이 북적대고, 거기 물범의 컹컹거리는 부두에서 게를 먹는 것이 이 지역의 별미로 알려져 있다. 한 마라가 1kg씩이나 되는 걸로 삶아서 빨간 등을 들치니 어릴 때 영덕 대게 즐기며 거기다 밥 비벼먹던 생각이 회상되었다.

  넛 크래커(Nut cracker)로 딱딱한 게의 다리를 깨서 게살 파내고, 게 바가지에다가는 밥을 비볐다. 대개는 게의 내장과 같은 녹색, 회색의 그 속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옛 생각에 지난날들을 되살렸다. 추억대로 그걸 즐길 수도 있었으니 올 새봄의 조짐이 나쁘지는 않았다.

  목련(magnolia)이 봄이면 미국 전역에서 허들어지고, 서울에서도 4월이면 곱게 피는 꽃이라 아직은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일전엔 아직도 꽁꽁 싸매고 있는 목련 꽃망울을 만져보고 싶었다. 어찌하여 이토록 추운 겨우내 너는 꽃망울을 맺힌 채로 이번 겨울같은 혹한조차 감내해내야 했는가?

  필시 목련은 나보다 훨씬 더 봄을 애타게 기다려온 게 확실하다. 따뜻이 난방 된 실내에서 내가 겨울을 나지만 저는 혹한(酷寒)의 겨울을 얇은 갈색 거죽 한 겹으로 버텨내야 한다. 그토록 기다려왔으니 온 겨울 움츠린 기지개가 한 번 터질라치면 그 소리 얼마나 웅장해야 하겠는가. 봄 터지는 소리가!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