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과 제수(祭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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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빔과 제수(祭需)

송병혁 0 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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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년에 진송가족 모두 복 많이 받으셔요!

  꼬까옷이나 새 신발, 양말과 장갑 같은 것이 설빔의 중요한 품목이었지? 오늘 나는 감이랑 바나나와 같은 과일, 무와 야채 등으로 설빔을 했다. 옷 같은 건 살 필요가 없고, 쇠고기는 미리 사다 뒀으니까. 떡국은 거래하는 은행에서 택배로 보내왔고. 보름에 부럼 깰 건 미국 다녀오는 길에 피스타시(pistachio)랑 견과류도 좀 사왔거든.

  우리 설빔의 대목에도 선물을 많이들 보내고 받지만 그보다는 전통적인 차례(茶禮)를 위해 제수(祭需)에 주안점을 두고 잔치 때처럼 음식장만이 아마도 우리에게는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은 점차 차례도 간소화하고, 음식도 적게 장만하지만 예전에는 대단히 많이 준비해야 대보름까지 길게 세배꾼들이 찾아들고 오가는 새해인사의 손님들이 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평소에 자주 먹지 못하는 비싼 육류나 생선도 좋은 것으로 사고, 집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 등의 식품도 많이 장만해야 한다. 육적(肉炙)을 위해 쇠고기를, 생선꼬치를 위해 문어, 상어, 방어, 홍어 같은 생선도 큰 것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설빔을 해오는 장꾼들은 무겁게 지고오고, 달구지에 실어 와야 한다.

  그제 뉴스에선 한 여론조사를 인용하면서 음력설 지키는 국민은 90%가 넘지만, 옛 전통대로 차례를 지내는 사람은 그 수가 좀 줄었다고 전했다. 그래도 아직은 설날 조상에 제사지내는 이들이 많다. 제수(祭需)를 위해 시장에는 동태를 껍질을 벗기고 머리 꽁지부분 잘라낸 채 포를 뜰 준비를 한 모습이 완연하고. 고사리 도라지나물 수북이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고객은 한산하네. 미리 준비를 다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가오리라고도 불렀던 홍어(洪魚)가 예전에는 많이 잡혔던 것 같다, 지금은 대개 남미의 칠레나 미국에서 많이 들여오지만. 많았기에 흔히 상어와 함께 자주 사왔고 제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방어(魴魚)도 요즘 시장에서 보는 삼치보다 약간 더 큰 사이즈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큰 것이어서 손으로 들고 올 수 없어 지게에 지고오던 것을 나도 종종 보았었다.

  설은 중국에서도 고대로부터 신()에게 제사하고, 조상을 공경하는 풍속이 수천년 내려왔다. 결국 새해를 맞으며 복을 기원하고[祭神], 조상에게 감사하는[祭祖] 경건한 명절이 설인 것이다. 중국 풍속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기재되어있다[正月一日 鷄鳴而起 先於庭前爆竹 燃草, 以避山臘惡鬼, 於是長幼悉正衣冠 以次拜賀].

  닭이 울면 일어난다는 것은 아주 경건하게 재계를 하고 선조에 대한 절대적인 공경을 다한다는 의미다. ()나라 상()나라와 같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풍속이었다. 폭죽을 울리는 건 악귀를 쫓아내는 것이다. 금년 춘절(春節)에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폭죽(爆竹)동경대폭파(東京大爆炸)” 라는 것. 6만원이나 호가하는 이 폭죽이 일본과의 댜오위다오(釣魚島)라는 섬 때문에 양국이 전쟁이라도 할 듯이 분쟁하는 틈에 나온 상품이다.

  실상 일본도 19세기말 명치유신(明治維新)까지는 역시 음력설을 새해의 첫날로 지켜왔었다. 중국은 1949년에야 양력을 공식적인 새해 시작으로 했고, 우리나라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있었던 다음 해부터 양력을 받아들였다.

  섣달 대목장에는 물자가 가장 풍요하고 온갖 것들이 다 시장에 공급되는 날이었다. 거래되는 물건이 거의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해지므로 이때는 구경거리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너도나도 장에를 갔다. 무엇인가 팔아서 돈을 만들고, 무엇인가 사와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설빔을 위해 옷 같은 것은 오래 전부터 만들고 준비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신식 옷을 사는 건 대개 대목장일 수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은 장에 간 부모가 무슨 옷을 사올까 더욱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하다. 예쁜 양말 새 장갑도 설 선물인 경우기 많았다.

  현대사회처럼 아이들에게 장난감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라 실상 그때의 설빔은 대개 생활필수품이었다. 세뱃돈을 받으면 학용품을 사거나 부스러기 돈으로 사탕 사먹을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어릴 때의 신바람 나던 감흥은 되찾을 수 없지만 오랜 전통의 설날을 위한 기본 설빔은 우리의 의례이다.

  중국은 설날에 만두를 주로 먹는다지만 우리는 떡꾹 먹는 날이 아닌가. 떡꾹 채비와 과일, 야채를 장만했으니 내게도 설빔은 된 것 같다. 이미 많이 먹었지만 또 한 번 떡국을 먹을 준비를 해야지, 설빔은 마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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