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炳武) 족형의 고희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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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炳武) 족형의 고희 잔치

송병혁 0 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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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순연에서 앙콜송을 하는 병무 이사)

 

 쾌청한 늦가을에 경춘(京春) 전철로 남춘천, 가까운 춘천경찰서 옆의 행복예식장 5층 연회실에서 병무(炳武) 족형(族兄)의 고희 잔치가 열렸다. 정오에 공식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에는 한복을 곱게 입은 내외분의 칠순연이 분위기도 다복(多福)한 광경이었다.

  진천송씨 대종회가 보낸 축하화환도 앞에 놓고 6남매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였으니 쌍쌍이 둘러서고 성대한 하객들이 가득한 가운데 행복이 넘쳐났다. 진행자가 오늘의 주인공인 송병무, 윤인자 내외분을 각기 자녀들이 업게 하고, 축하객들의 넓은 좌석을 한 바퀴 돌게 하네. 핸섬하게 남자다운 병무 족형은 미소를 한가득 얼굴에 피어내고서 등에 업힌 채로 하객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었다.

  생선회에서부터 갈비찜, 떡과 케잌과 과일이며 상 가득히 차린 위에다 맥주와 소주와 콜라 사이다를 그득히 올려놓고 모두 즐기는데 장수하라는 상징으로 가락도 긴 국수를 따끈한 국물에 금방 내왔다.

  정말 부자(富者)였다, 목재사업을 크게 한다는 족형은 남자다운 스타일로 소문이 나있는데, 아들 4형제를 두었으니 요새 보기가 드문 큰 부자로 자그마치 오부자(五父子)가 아닌가! 따님 둘에 6남매가 모두 부모님을 닮아 미인과 잘 생긴 모습들이었다. 손자녀도 이미 여섯이나 된다니 고희를 맞아 행복함도 충만하였다. 한복을 입은 자녀 6남매 커플들이 장내를 돌면서 인사를 하고 음식을 권하였다.

  노래를 요청 받고 병무 주인공은 마이크를 잡더니 한량처럼 잘도 부른다. 앙코르 송을 청하자 부초 같은 인생을 다시 멋지게 열창했다.

  “내 인생 고달프다 울어본다고 누가 내 맘 알리요,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 아니냐. 웃으면서 살아가보자. 천년을 살리오, 몇 백 년을 살다 가리요. 세상은 가만있는데 우리만 변하는구려저 멋진 노래 솜씨며 남자다운 몰골이 70성상을 살아왔으니 그 가사만큼 뜻도 깊었다. 정말이지 칠순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리라 나도 생각했었는데. 부인도 미인인데다 노래 솜씨 역시 대단하여 천생배필이었다.

  ‘빠름 빠름이라는 광고 메시지와 같이 우리 민족은 참으로 동작이 빨리 빨리 돌아가는 것 같다. 추근추근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고 노닥거리는 서양 사람들의 파티(party)와는 대조가 아니 될 수가 없는 거 있지. 앞에서는 의식이 진행되는데 열심히 먹던 옆 자리의 사람들은 20분도 채 안 걸려서 다 먹고 자리를 뜬다. 우르르 몰려 나가자 또 새 하객들이 들어온다. 아마도 그래야 장소가 적당할 런지 모르겠네.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니까.

  40년 전 춘천에 잠깐 있었지만 모두가 낯설고 다른 천지가 되었는데, 손님들 중에 진천송씨 종친으로 서면의 회양공종중 촉친 건식(健植) 족숙과 두어 분 더 친면이 있어 많이 반가웠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구절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던 이래로 사람들은 70 나이를 살기가 어렵다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즈음이야 빈번한 70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세상이 아닌가. 대개는 지금 회갑 잔치는 하지 않는데 비하여 친순 잔치의 경향이고, 89순 잔치도 종종 보게 된다. 공자가 70이 되어서는 마음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행동해도 실수가 없다해서 종심소욕(從心所欲)이라는 표현에서 종심(從心)’이라고 70세를 지칭하기도 한다.

  70 고개에 올랐으니 병무 족형도 공자처럼 마음에 원하는 바를 즐겁게 실행하며 허물없이 행복한 여생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하며 축하장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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