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주 장군 제향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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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주 장군 제향참사

송병혁 0 3348

중양절의 청명한 날씨에 충의사(忠義祠)에서 60여 명이 참제(參祭)한 연례 향사(享祀)였다. 우리 진송(鎭宋)에서는 재규(在圭) 회장과 대종회 실무진을 비롯하여 해마다 가까이서 참여하는 용인의 병의(炳義), 병욱(炳郁) 종친 형제, 우산종중에서 미니밴으로 10, 모두 16명이었다.

7백년 전통의 죽주산성(竹州山城) 송문주(宋文冑) 대장군의 시향(時享). 1236년 막강한 몽골의 살리타이[撒禮塔]가 이끄는 대군을 맞았으나 용맹과 지략을 갖춘 방호별감(防護別監) 송장군의 병법은 접전마다 승리로 이끌었으니 보름을 버티다가 마침내 몽병(蒙兵)들이 퇴각하였다. 성문을 열고 후미를 때리게 하던 순간을 고려사절요는 기술하기를 부지기수의 적군을 쳐서 피바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송장군이 아니었다면 죽주는, 죽산(竹山)의 옛 이름, 멸절되었을 테니 선조가 없었고 이어지는 지금의 후손도 없었을 것이라는 감격으로 수백 년을 감사 제사로 올려오는 것이다. 고을의 원님이나 현감(縣監)이 제주(祭主)가 되어 해마다 거르지 않고.

죽산면 죽산자치위원회가 주관한 제향이었는데 초헌관에 이주성 죽산면장이 예복을 입고 잔을 올렸다. 아헌관에는 죽산출신 안성시의원, 종헌은 자치위원회 이옥자 위원장이었는데 처음으로 여성 헌관이 된 셈이다다례헌관(茶禮獻官), 일반 제례에서 유식(侑食)과 비슷한 의식재규 대종회장이 선정되었다.

바로 지난 주간에 우리 대종회가 주관하여 송문주 장군 영정봉안식이 있었다. 이로서 우리가  죽주산성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되었다. 제파 후에는 바로 산성 아래의 낙지의 꿈이라는 식당에서 주최 측이 제공한 부페로 점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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