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구우(竹馬舊友)의 재회(再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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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구우(竹馬舊友)의 재회(再會)

송병혁 0 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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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청청하다. 옛날엔 희수(稀壽)의 나이라고 인생 칠십이 고래(古來)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 했지마는 우리가 고희(古稀)를 단지 4년만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만인가? T(T)는 그래도 가끔씩은 샘들을 가서 만났을지라도 울진으로 간 병W(W)이는 실로 오랜만이다. 40성상(星霜)은 되겠다. 저는 울진(蔚珍)으로 갔고, 나는 1960년대에 서울로, 70년대 말에 미국으로 떠나살았으니까.

고향을 지킨 T규랑 시골 남녀친구들이 20여 명 울진의 불영계곡(佛影溪谷)으로 갔다. 전국적으로 시원한 휴양지로 소문난 피서지(避暑地)라서인지 절정의 더위를 식히려 휴가를 온 젊은이들로 골짜기의 물가에는 소복소복했다. 봉화 쪽에서 넘어오는 계곡에는 물도 많지 않으면서도 래프팅(Rafting)의 플라스틱보트를 빙빙 돌면서 떼 지어 타고 줄줄이 내려온다, 역시 신나는(exciting) 괴성을 지르면서.

정말이지 울진은 훨씬 시원했다. 한 펜숀(Pension)에 짐을 풀고는 우리가 병W의 농장으로 올라가니 습도가 전혀 없는 800m 고지(高地), 무릉도원(武陵桃源)인양 상쾌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아닌가! 높은 곳이라도 그 위엔 평지가 조성되어 한 농장을 꾸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넓은 밭에 비닐로 땅을 덮고 반듯하게 심은 고추는 깨끗하고 충실하게 열리고 있었으니 그토록 가뭄이 심한 아래세계와는 달리 높은 곳엔 구름이 비를 자주 날라다준다니 가뭄도 몰랐다네. 큰 나무 솔숲으로 두르고 파란 하늘 아래엔 온갖 과목(果木)과 기화요초(琪花瑤草)의 약재(藥材)를 위한 식물들이 사방에 성장하고 있었다.

싸리 꽃이 풍성하게 피는 8월 초순은 산자락에 놓아둔 토종 벌통이며 더덕줄기와 산머루까지 심어놓았다. 비닐하우스에는 유기농 토마토가 열리니 작거나 크거나 간에 모두 상품이 된단다. 수요(需要)는 이미 정해져 있어 판로(販路)조차 문제가 없고 가격마저 일반 생산품과는 달리 3배의 고가(高價)라고 했다, 친환경 농작물(農作物).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펜숀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도 T규랑, T(T)이랑 산보삼아 4km 산길을 올라갔다. 신선한 공기에 물소리 들으며 야콘(yacon) 밭들을 지나간다. 돼지감자와 비슷한 야콘은 남미의 안데스(Andes) 산맥 지대에서 온 품종이니 전에는 우리가 재배하질 않아서 내게는 낯설었다. 서울사람이 듬성듬성 아담하게 지은 별장 겸 농장이 있으니 살기에도 자연환경이 아주 멋졌다.

불영계곡을 떠나던 날 아침 펜숀의 창가에서 내 휴대폰에다 셋의 사진을 담았다. 울진산인(蔚珍山人) 병W와 샘들의 고향지기 T규, 세상의 방랑자가 되어버린 나랑 이렇게 옛날을 회상하면서 지금의 순간을 붙잡아놓았다. 또 다른 65년을 기대할 순 없을 테지만 적어도 20년 후에는 추억이 되겠지? 4반세기를 더할 수 있다면 망백(望百)이 될 때 울진의 불영계곡에서 찍은 이 사진이 기억될 만 하리라.

T규는 농고(農高)를 나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의 가업으로 고향을 지켜오고 있으니 샘들의 터줏대감 자리를 고수해왔다. 어려서부터 병W인 푸른 초장(草場)에 목우(牧牛)를 꿈꾸면서 늘 이야기하더니 마침내는 울진의 산 속에다 그 꿈을 펼쳐놓았다. 대규는 3년 전까지 만도 낙농(酪農)의 젖소를 크게 치다가 지금은 정리했고, W는 육우(肉牛) 씨받이도 지금 키우고 있다.

아 반세기의 세화(歲華)가 흐른 뒤 우리가 이렇게 나란히 앉았다. 샘들에서 자랐던 셋이서. 죽마구우(竹馬舊友)이면서도 우리는 족친(族親)이다. 재당질(再堂姪)T규는 우리 문중의 종손(宗孫)이고, 14촌의 병W는 샘들 아랫말 종가(宗家)에서 세 분의 형님들이 모두 작고하시므로 이제는 집안의 어른이 되었다.

이런 날을 우리가 언제 기약했을까마는 불영계곡에서 이순(耳順)의 만년(晩年)에 이렇게 만났다. T규는 염색도 없이 놀랍게도 흑발(黑髮) 그대로이고, W인 살짝 서리가 섞였으나 동그란 동안(童顔)이 여전하였다. 태평양을 오가며 머리카락 다 날려버린 나는 귀밑에 남은 빈발(鬢髮 )마저 잿빛이 되었다네.

W가 신선하게 금방 따온 유기농 토마토를 먹으며 60성상의 주마등(走馬燈)을 스치는 꿈같은 현실의 아침이다. 다시 모일 때를 기약해보며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邂逅)가 서정(抒情)을 꿈틀거리게 한 우리 삶의 소중한 순간이 한 장의 사진에 응집(凝集)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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