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은 학자 죽계공 諱 광보 조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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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잡은 학자 죽계공 諱 광보 조부(2)

송은도 0 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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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계공이 몇 달 동안 호서지방을 두루 편답한 후 영남지방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루는 어느 산골에 이르렀는데, 이 산골은 꽤 깊고 멀기는 하지만 그 지대가 평탄하여 그 지대만 가지고도 수십호의 촌락이 넉넉히 살 만한데, 어인 까닭인지 인적이 전혀 없고, 논 밭이 황폐해져 있고, 불 타고 남은 자리들이며...참으로 쓸쓸한 것이다.

죽계공은 그런 빈 터를 오락가락 하면서 사면을 두루 살피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고 궁금하여 누구든지 만나면 연유를 알아보리라 작정하고 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산기슭에 초가 한채가 쓸쓸히 서 있는게 보여 얼른 다가가 주인을 찾았다

곧 노인 한분이 나오길래 이곳 정경이 왜 이런가 알려주십사 부탁하니,0

"이곳이 십여년전만해도 꽤 번화하고 훌륭한 촌락이었다오. 그런데 저 산 너머에 쓰러져가는 절이 하나 있는데, 밤이면 도깨비들이 들끓고 귀신들이 발동하여 인가로 내려 와, 집에다 불을 지르고 집안으로 들어 와 가구들을 부시어, 어찌도 그 작폐가 심하던지, 이 동리에 살던 사람들이 도무지 살 수가 없게 되었소. 그래서 매알같이 사람들이 이사를 가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한집도 남지 않게 되었구려. 내집은 큰길에서 가깝고 절에선 멀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어, 이렇듯 혼자 남아 살고 있는 것이라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죽계공은 그 요사스런 것들을 몰아내어 사람들의 근심을 덜겠노라 작정하며, 그 절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얼마만에 죽계공이 절 앞에 이르니, 법당 하나만 외따로 남았는데 명색이 절이지 지붕 위의 기와는 거의가 다 벗겨지고 서까래까지 썩은 곳이 많았다.

죽계가 법당 안으로 들어서니 찬 바람이 휙 돌며 이상한 악취가 코를 찔러 살펴보니, 사람 해골같은 것이 여기저기에 흐트러져 있어 소름 끼치는 광경이나, 죽계공은 조금도 겁내는 빛이 없이 처음 섰던 자리에 떡 버티고 서서, 동정을 살피며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렇게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어느새 밤이 깊어 이경이 지난 때다. 사면은 죽은 듯 고요하고 이따금씩 부엉이 우는 소리만 울리는데, 그때, 별안간 산골짜기 쪽에서 천병만마가 들끓어 오는 듯 요란스럽게 무슨 불빛과 악마떼 같은 것이 이절을 향해 살과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어허,그  노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로구나, 어디 이놈들 견디어 보아라'

이같이 생각한 죽계공은 단단히 버틴채 잔뜩 벼르며 법당 아래 뜰을 바라보니, 귀신들 떼가 오글오글 들끓으며 가까이 달려오는데,

제일 앞서 법당으로 들어서던 귀신 하나가 죽계공이 서 있는 모습을 힐깃힐깃 바라 보더니, 황황히 밖으로 뛰어 나가면서 귀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법당 안에 사람이 하나 있다"

그 소리에 뭇 귀신들은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오늘 밤에 우리들을 심심치 않게 하느라고 장난거리가 하나 생겼구나"

기뻐들하니 대장격인 귀신 하나가 장검을 빼들고, 법당 안으로 썩 들어서더니
죽계공을 보자마자 황급히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얘들아, 큰일 났구나. 법당 안에 있는 사람을 보통 속객으로 알았더니, 천만 뜻밖에 송공이 와 있구나. 송공은 본시 역귀사신(役鬼使神)하는 재주를 가진 분이니, 오늘밤에는 우리가 날뛸 처지가 아니다 어서들 달아나자"

그제서야 뭇 귀신들은 허겁지겁 도망하려고 하는 판에, 죽계공은 하늘을 우러러 염주(念呪)를 외우고 나서,

"이놈들,어디로 도망을 가려 하느냐? 다들 이 앞으로 냉큼 못 오겠느냐?"

하고 고성대갈 하였다.

이 호령에 도망하려던 뭇 귀신들은 당장에 질겁을 하여 죽계공 앞으로 몰려 와 엎드리며 살려달라 애걸복걸 하였다.

죽계공은 두 발로 마루청을 탕탕 구르면서,

"너희들이 그동안 지은 죄는 죽어 마땅하니, 밤이 밝을 때까지 잠자코 엎드러서 내 명령을 기다리라"  하고 호령호령 하였다.

뭇 귀신들은 감히 한마디 말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죽계공 앞에 엎드려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훤히 밝아왔다. 날이 활짝 밝은 뒤에 죽계공이 마루 바닥 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귀신들은 간 곳이 없고 법당 벽에 붙어 있던 오래된 그림조각이 마루바닥에 함박 떨어져 바람에 훌떡훌떡 날리고 있었다.

그제야 죽계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그림조각을 한데 모아놓고, 불을 질러 당장에 살라버렸다.

죽계공이 이 같이 해 놓은 뒤로는 그 절안에서 귀신이 들끓게 되지 아니하고, 그 근방에는 귀환(鬼患)이 전부 없어져서, 사람들이 다시 옮겨 와 살게 되니 수년 후에는 그 동리가 다시 번화한 마을로 변하게 되었다.

 

송광보(宋匡輔)는 호가 죽계(竹溪)이며, 고려조 제 31대 공민왕 시절의 사람이다.

나중에 벼슬이 상서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두뇌가 명석하며, 사리에 밝아 임금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한다.
고려가 무너지고 이성게의 조선이 섬에
"이군불사(二君不仕)"는 신하된 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이라며
평생 벼슬을 마다하며 진천으로 내려가 빈한하게 살다 명을 달리했다.
죽계공 말년엔 그 생활이 참으로 빈곤하여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하더니, 같이 고생하는 비복들이 불쌍하여 자유롭게 풀어주려 했으나, 비복들은 오히려 울면서 그럴 수 없노라며 종신토록 송공을 극진히 모셨으니, 그 성품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출처] 귀신 잡은 학자-죽계 2|작성자 시이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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