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의 장인 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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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장인 송청

송은도 0 3860
 
최충헌의 장인 宋淸 (송청)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글이 인터넷에 가끔 보입니다.
 
요즘 대하드라마 '무신'의 영향으로 송청에 대한 관심도가 송씨들 사이에 높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여년 전에 KBS에서 방영한 '무인시대'에도 최충헌의 처가 송씨부인으로 방영이 되어, 한 때 최충헌의 장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굼증이 이미 일부 송씨들 사이에 오고갔던 것도 사실 입니다.
 
무인시대 방송을 본 이후, 본인 또한 10여년전 부터 최충헌의 장인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그 분의 내력을 확인해 보자 하였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청 위 분의 행적이나, 우리 진천송씨 및 다른 송씨들과의 관계는 알수 없습니다.
 
다만 고려사에 최충헌이 3명의 부인과 1명의 첩실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이 상장군 송청의 딸 이다... 라는 것이 나오고,
고려 명종 시절에 송청이 관직을 받는 부분이 나옵니다.
송청 위 분에 대한 기록은 사실 이것이 전부 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확인 한다는것은 많이 어렵지요 
 
한편, 지난 글에서 최충헌의 부인이 송씨 이므로, 우리 진천송씨가 최충헌 정권의 특혜를 받지 않았냐... 라는 가설을 올린 적이 있지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 입니다.
 
그런데 , 위 가설은 꼭 우리 진천송씨만을 두고 한것은 아니며, 여산 송씨 및 다른 송씨들도 참고하여 추리해본 가설 입니다.
 
우리나라 기록에 최초로 확인되는 송씨는 송함홍 입니다.
삼국사기 열전 궁예편을 보면 송함홍은 비록 궁예의 후고구려 (태봉국) 문관 이었으나, 훗날 궁예의 폭정에 반감을 갖고, 왕건에 의탁하여 고려 건국에 일조한 개국공신 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측 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송씨는 고려 초기에 비록 상놈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명문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고려사를 대충 훌터보면 고려 초기부터 중반까지 관직에 출가하여 문무 양반의 기틀을 마련하였지만, 그렇다고 명문 집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성씨들의 경우 고려초기부터 여러 고관들이 고려사에 줄기차게 보리며, 본관도 소개되어 있지요.
 
그런데, 고려 무인난 이전까지 고려사에 기록된 송씨는 5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아주 적습니다. 더욱이 본관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송함홍, 송능, 송굉, 송승연, 송균언이 있으며,  진천백 조부님과 동일한 시기에 송행충이 보입니다.
 
송능은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 전쟁에 참여한 무장출신 개국공신으로 보국대장군 칭호를 받았고,  100세가 되었을 때 현종으로 부터 상을 받는 내용이 고려사에 보입니다.
 
송승연 (宋承演)은 성종시절 (서기 989년)  조교(助敎), 국자박사(國子博士)로 지방에서 학생들을 잘 지도해 지위가 높아지고 상을 받은 내용이 고려사에 보입니다. 

 
송굉은 목종시절 (서기 1000년)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했다고 고려사에 보입니다.
 
송균언은 현종시절 (서기 1011년) 거란과의 침략시기 거란의 동태를 파악하고 거란이 물러난 사실을 조정에 알려, 그 공로로 벼슬을 받은 사실이 고려사에 보입니다.

 
그런데, 현재 진천송씨 뿐 아니라, 여산, 은진, 신평, 야로 등 여러 송씨들의 족보에 위 분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집안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고려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분들의 계보를 잃어버린 것 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계보는 명문 집안 사람들이 유지 했습니다.
위 처럼 송씨는 고려초기 부터 중엽에 이르기까지 문무양반은 맞습니다.그러나 고려사에 본관이 소개되지 않고, 그 후손들이 계보를 잃었다는 것운 명문 집안의 대열까지는 오르지 못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송씨 중에 가장 높은 벼슬에 올랐던 분이 송유인 입니다. 송유인은 고려사 열전 반역편에 기록된 사람인데요.
 
위 송유인이 고려 무인 난의 최초 1인 정권자 정중부의 사위 입니다.
본래 무장출신으로 이자겸의 난에 부친이 전사한 공로로 산원으로 음보됩니다.
-우리 진천백 조부님도 이자겸의 난 때에 전사 하였는데요. 송유인의 부친도 이때 전사 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진천백 조부님의 아들 이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이자겸의 난때에 전사한 분이 대장군 송행충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사에 송유인의 부친 이름은 나오지 않고, 우리 진천송씨 족보에 진천백 조부님은 외아들 원겸을 두었다고 하였으니, 송유인은 우리 진천송씨와는 무관 합니다.-
 
송유인은 송나라의 대상인 과부와 결혼하고 막대한 재력으로 문관들과 친교 합니다. 그래서 주위 무관들의 시기를 받는데요. 정중부가 권력을 잡자, 전 처를 섬에 보내고, 정중부의 딸과 혼인하여 사위가 됩니다.  벼슬이 참지정사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오르고, 그 권력이 어찌나 높았던지, 왕실을 자기 집 드나들 듯 출입하며, 왕실의 별채를 개인 사택으로 사용할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이용한 전횡이 극심 하였는데, 고려사에 보면 <재상이하 고관들이 고양이 앞에 쥐 마냥 숨도 크게 쉬지 못 하고, 눈치만 살피며 아무말도 못 하였다.>합니다. 한마디로 충신은 절대 아닌 듯 보입니다.
 
훗날 경대승에 의해 정중부와 정균 부자가 죽음을 당하며, 송유인도 그 아들 송군수와 비참한 최후를 당합니다.
모두 반역자로 몰려 목이 베이고, 저잣거리에 효소 됩니다. 죽어서 까지 수모를 당하지요. 이렇게 송유인의 일족은 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날 현존하는 송씨와는 무관하다고 볼수 있지요.

 
이후, 고려 무인정권은 경대승을 거쳐 이의민에게 돌아가나,
이의민은 최충헌, 최충수 형제에 의해 역시 비참한 최후를 당하는데요,
최충헌은 그 아우 충수 마저 죽이고 왕권을 능가하는 절대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때 최충헌은 다른 무인 집권자와 다르게, 문관 우대 정치를 펼칩니다.
 
그 동안 수많은 문관들이 무인들에 의해 쫓겨나고, 죽음을 당했는데요. 최충헌은 무인들 보다는 문관을 우대 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한편 정적을 감시하기 위해 사병군대인 교정도감을 설치하지요.
교정도감은 전 권력자 경대승의 사병조직 도방을 따른 것으로,
고려 무관 최고 의결기구인 중방과 사병조직 도방을 합한 형태 입니다.
이러한 최충헌의 문관우대 정책과 교정도감은 4대 60년간 최씨집안의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발판이 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참모로 활약하고, 특수부대로 구성된 사병들이 호위하니 그 정권이 탄탄해 질 수밖에 없지요.
 
최충헌 집권기를 거치면서 고려사에 송씨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며, 동시에 본관도 소개 됩니다.
 
고려사에 보이는 송씨 중 처음으로 본관이 소개된 인물은
시랑공 諱 순 조부님과 어사공 諱 언기 부자이며, 시랑공의 아우 안찰사공 諱 국첨 입니다. 
위 분들은 모두 鎭州人 이다고 본향이 밝혀져 있지요.
 
그리고, 고려말에 이르러, 친원세력과 임연 정권을 무너뜨리며 성장한 집안이 여산송씨 인데요.
여산송씨의 경우 고려사에 원종 11년 (서기 1270년)에 이르러 송송례, 송염, 송분이 여랑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고려열조방목을 보면 공민왕 11년 (서기 1362년) 은진송씨 송명희가  대과에 급제 합니다. 고려열조방목을 보면 송명희의 父 춘경, 祖 득주, 曾 대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 에서 보이는 曾 대원이 은진송씨 시조 입니다.
 
고려사와 고려시대 기록에 송씨의 본관 발생순서는
진천송씨 고종 28년 (서기 1241년) 시랑공 諱 순
여산송씨 원종 11년 (서기 1270년) 송송례,
김해송씨 충혜왕 원년 (서기 1330년) 경오방(庚午榜) 을과(乙科) 1위 장원(壯元) 송천봉
은진송씨 공민왕 11년 (서기 1362년) 송명희
입니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중기 무인정변이 일어나기까지 송씨들은 그 비중도 적거니와 본향이 소개되어 있지 않으나.
 
최충헌 집권기 이후 송씨들이 고려사에 갑자기 늘어나며 본관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최충헌의 장인이 송청 인데요.
물론 송청은 고려사에 그 행적이 거의 없습니다.
절대 권력을 잡은 최충헌의 장인이고, 무인집권 시절 상장군 인데, 고려사에 그 행적이 별로 없다는 것은 최충헌의 집권 이전에 사망하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
 
그런데,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당시 최충헌과 사돈을 맺은 송씨들의 막강한 권력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려사에 송청의 아우는 송홍렬 (宋洪烈) 인데, 고종 3년 서기 1216년 7월 추밀원부사로 죽었다.고 전하며 그 인물을 평가 합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송홍령은 최충헌의 인척으로 세력을 믿고 교만하고 방자하며 성품이 익살스러웠다. 매양 여러 왕씨의 집에 이르러 진귀한 완구를 보면 반드시 취한 뒤에야 그만 두었다. 그런 까닭에 여러 왕씨가 송홍렬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급히 사람들 시켜 진귀한 보물을 거두어 간수한 뒤에 송홍렬을 보았다.  무릇 최충헌에게 청구할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송홍렬에게 물어야만 이루어지게 되니 이로써, 여러 왕씨와 귀척(임금의 인척)들은 앞을 다투어 송홍렬에게 결탁하려 하였다.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충헌 집권시절에 그 사돈 집안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쥐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 입니다.
 
이 무렵 송씨들이 최충헌과 상당히 친했나 봅니다.
최충헌의 장남이 최우 ( 초명 : 이)인데, 최우의 딸이 송서에게 시집을 갑니다.
 
즉, 최씨 집안과 송씨 집안이 겹겹하여 사돈을 맺고 있지요.
 
물론, 송청, 송홍렬, 송서 위 사람들이 우리 진천송씨나 여산송씨, 은진송씨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현재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에 고려사에 비로서 송씨는 최초로 본향 鎭州 (진천의 옛 지명) 집안이 소개되고, 그 이후에 여랑 (전북 여산+낭산), 김해, 은진 집안 등이 소개되고 있으니,
 
진천송씨, 여산송씨, 김해송씨, 은진송씨 등이 명문의 대열에 오르는 배경에는 송청, 송홍렬, 송서 위 3 사람의 영향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최씨정권의 사돈 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 이지요.
 
최충헌이 송청의 사위가 되고, 송청의 아우 송홍렬이 인척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최씨 정권의 문관우대 정책이 시행되던 시점에... 진천송씨는 시랑공 諱 순, 안찰사공 諱 국첨 형제가 대과에 급제하여 문관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시랑공의 아들 어사공 諱 언기 조부가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 합니다.
한편, 어사공의 아우 諱 언상 조부가 무관으로 그 시대 무관 서열 3위 안에 들어갑니다.
 
고려사와 진천송씨족보를 볼 때 송청, 송홍렬, 송서 위 분들이 진천백의 후손이 아닌 것은 확실 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친족이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한편, 우리 진천송씨가 명문 집안에 오른 직접적인 이유는 시랑공 諱 순 조부와 어사공 諱 언기 조부 입니다. 위 분들이 모두 고려사 충신열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안찰사공 諱 국첨 조부님 경우는 비록 열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절개가 곧은 관리로 평가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철저한 씨족공동체를 바탕으로한 권문귀족 사회 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뒤바뀌는 사건이 일어나면, 망하는 집안이 있지만 반면 득세하는 집안도 반으시 생깁니다.
그런데, 고려사를 보면 송씨는 무인집권기에 급성장한 집안이 확실하며, 이 현상은 우리 진천송씨 뿐 아니라 여산송씨, 은진송씨 공통 입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최충헌의 절대 권력 집권기에 겹 사돈을 맺었던 송청, 송홍례, 송서는 그 당시 고려시대에 살았던 진천송씨 및 여산송씨, 은진송씨의 선조님들과 가까운 친족 관계로 보입니다.
 
잠시 고려의 무인정권 교체를 살펴보면,
이의방, 이고, 채원 연합 집권 -> 이의방 집권 ->정중부 집권 (사위 송유인) -> 경대승 집권 -> 이의민 집권 -> 최충헌 집권 (장인 송청) -> 최우 (사위 송서)  ->최항-> 최의->김준 -> 임연, 임유무 집권 ->송송례, 송염, 송분의 무인집권 타도 이렇게 됩니다.
 
여기에서 김준은 임연의 양부 입니다. 그런데, 김준, 임연이 최의를 주살하고 최씨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곧이어 임연이 양부 김준을 주살하고 정권을 독점하지요. 임연이 죽고 그 아들 임유무가 권력을 승계 받으나, 여산송씨 송송례, 송염, 송분 부자에 의해 임유무가 주살 되어 무인시대는 그 막을 내립니다.
 
최충헌과 겹 사돈을 맺었던 송씨집안...
그런데, 그 최충헌 집안이 김준, 임연에 의해 무너지자,
곧바로 송송례 부자가 임씨정권을 무너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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