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개된 송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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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개된 송치 할아버지

송은도 0 3977
 
송치 (宋寘) 할아버지는 진천송씨 이다.
위분이 전서공 諱 광우 조부의 둘째 아들로,
태종 5년에 과거를 급제하여, 우리 진천송씨에는 조선시대 최초로 대과에 급제한 분이다.
그런데, 위분의 자손은 한동안 번창 하였으나,,차츰차츰 그 세수가 줄어들더니 17代孫  (植자 항렬) 이후 자손이 없어졌는지 지금은 자손이 등재되고 있지 않다.
 
작년 어느 때이다..
인터넷에서 글을 읽었는데,
여산송씨 사람들이 宋寘 할아버지가 여산송씨라고 쓴 내용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여산송씨들의 글에 의하면 그 근거는
1971년에 쓰여진 국회도서관 국조방목 영인본의 색인목록에 宋寘가 여산송씨로 되어있고 그 부친이 윤시 (允詩)로 되어있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산송씨 족보에도 송치가 있는데,
그 이름자가 置(치) 이며, 부친 윤시 (允時) , 조부 진 (瑨), 증조 분 (玢)이고,
한편, 옛 족보에는  置 이며, 과거급제 내용과 관직이 없으나,
최근 족보에  이름을 寘로 바꾸고, 태종 5년에 대과에 급제 하였다고 추가하였다.
즉 여산송씨의 치는 우리 진천송씨와 독음만 같았지 글자가 다르며,
1971년 국회도서관 발행 국조방목 영인본의 색인표가 잘못되어 있다.
색인표에는 宋寘의 본관이 여산이고 부친 윤시로 되어 있으나,
정작 영인본 원문에는 
宋寘의 본관이 진천이며, 부 : 광우,  조 : 소,  증조 :  지백으로 되어있다.
 
즉, 여산송씨 사람들이  1971년 국조방목 국회영인본의 색인표 오타를 잘못 알고, 자신들의 족보에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최근에 발행한 여산송씨 족보와 국조방목 국회 영인본의 색인표만 의지하여 
宋寘가 여산송씨이며, 가족관계는  父 : 윤시,  祖 : 진,  증조 :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여산송씨의 옛 족보를 보면 위 송치는 置로 되어있어 글자가 분명히 다르고, 옛 족보에는 과거에 급제하거나 관직명이 전혀 없다.
최근 족보에 태종5년 과거급제 내용과 정언이라는 관직명을 덧붙이고 이름을 寘로 바꾼 것이다. 이것이 1971년 국회도서관 발행 국조방목 영인본의 색인목록이 잘못된 탓에 여산송씨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한편 진천송씨 족보에는 1673년 계축보 이래
전서공 둘째 아들로 宋寘라는 이름이 계속 보이고,
태종5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정언이라는 관직명이 쓰여있다.
한편,,, 1971년 국회도서관 국조방목 영인본 본문에는
송치가 진천송씨이고, 父 광우, 祖 지백,  曾祖 전 라고 밝혀있어,
진천송씨가 틀림없으며,
국회본 영인본의 색인목록과 여산송씨 족보가 실수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한국한중앙연구원에  송치 할아버지의 본관을 진천으로 고치고, 가계도를 수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두고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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