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송씨통사-송(宋)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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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송씨통사-송(宋)의 뜻

송은도 0 3858
 
우리 진천 집안 송씨의 성씨는 宋 이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성씨가 본래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송(宋) 이라는 한자는 '나라'와 '성씨'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역사이래 송(宋)이라는 나라 이름이 3차례에 개국 되었다.
 
① 중국 주(周)에 은(殷)이 멸망 뒤, 주왕(紂王)의 서형 미자 계(微子 啓)가 은나라의 유민을 거두워, 세운 나라이다.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商邱縣)에 도읍 하였고, 춘추시대에 12제후의 하나였으나, 전국시대에 제(濟). 초(楚). 위(魏)의 세 나라에게 망하였다.
 
② 서기 420년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나라로 동진(東晋)의 유유(劉裕)가 건강(健康)에 도읍을 정하여 세운 나라가 있다.
 
③ 서기 960년에 조광윤(趙匡胤)이 당나라 말기 5대 10국 시절 후주(後周) 공제(恭帝)의 선위를 받아 개봉(開封)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나라가 있다. 
 
이 처럼 宋은 나라 이름으로 자주 사용되고, 성씨로 삼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 뜻이'나라'와 '성씨'로 한정 되었다.
 
그런데, 한자풀이 사전을 찾아보면,
宋은  ‘宀' + '木'으로
갓머리는 모자와 지붕을 의미하며, 목은 나무와 기둥을 뜻하고 있으니,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은 곧 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건축물에는 주택, 궁궐, 사당이 있다.
 
사당은 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고대시절 하느님에 대한 제사장은 곧 왕과 황제이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가문의 계승자가 주관 하였다.
 
즉, 한자에는 宗 (마루 종)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본래 宋은 宗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주나라 성왕이 은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유지토록 하기 위해, 은나라 황실의 후손 미자를 송(宋)나라 왕으로 삼았다는 내용에 의해서 宋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사마천 <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은나라를 무너뜨리자, 미자는 종묘의 제기를 가지고 군문(무왕의 軍門)으로 가, 윗옷을 벗고 손을 등뒤로 묶고는, (사람을 시켜) 왼쪽으로는 양(羊)을 끌도록 하고, 오른쪽으로는 띠를 쥐게 하고는 무릎을 꿀어 무왕에 아뢰었다. (항복하였다)
이에 무왕은 미자를 즉시 풀어 주고 그의 작위를 이전과 같이 회복시켜 주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녹보를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이어가게 하고, 관숙과 채숙으로 하여금 그를 보좌하게 하였다.

 
이전에 주왕(紂王)은 전쟁에서 군세가 밀리자, 스스로 불속에 뛰어들어 자결 하였다고 한다.
한편, 관숙과 채숙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친 동생인데, 은나라를 정벌하고 무경을 제후로 봉한 뒤, 무경의 반란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
 
  무왕(武王)이 세상을 떠났으나 성왕이 어려, 주공(周公) 단 : (무왕의 동생)이 대신하여 정사를 수행하여 나라를 장악했다. 관숙과 채숙은 주공을 의심하여 곧 무경과 함께 난을 일으켜 성왕과 주공을 습격하려 했다.
주공은 성왕의 명을 이어받아 무경을 주살하고 관숙을 죽였으며 채숙을 내 쫓았다.
그리고 미자 계 (微子 啓)를 은나라의 후사로 대신하여 그의 조상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미자는 [미자지명 微子之命]을 지어 이 뜻을 널리 알리고는 송나라 땅에 나라를 세웠다.
미자는 본래 어질고 현명하여 무경을 대신할 수 있었으므로, 은나라 유민들 또한 그를 매우 존경하고 아꼈다.
미자 계 (微子 啓)가 죽자 그 의 동생 연(衍)을 왕의 자리에 오르게 했으니, 이사람이 미중(微仲)이다.

 
위 내용에서 보이 듯, 은나라 말기에 주왕(紂王)이 주나라 무왕(武王)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하고, 은이 멸망하게 되었다. 이때 주왕(紂王)의 이복형 미자 (微子)가 은나라 황실의 제기를 무왕(武王)에게 받치며 항복 하였고, 훗날 미자가 송(宋)나라의 왕이 되어, 은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이어가게 된 사실에서 宋의 어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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