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송씨통사-한국의 송씨는 고조선 (상나라) 황제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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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송씨통사-한국의 송씨는 고조선 (상나라) 황제의 후예

송은도 0 6780
 
중국의 시전(時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東方之人 以大從弓'---- '동방 사람은 활을 잘 다룬다' 
위 글을 동방의 사람은 활을 잘다루는 대인이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大從弓 (활을 크게 따르다)의 뜻이니 의역을 하면 활을 잘 다룬다는 뜻 으로 보인다.
 
위에서 大와弓을 합하면, 夷 (오랑캐 이)가 된다. <오랑캐 이>는 활을 잘 다루는 이민족의 뜻 인데, 중국인들이 보기에 동방의 사람들은 활을 잘 다루는 사람들로 보였나 보다.
 
중국은 우리 고조선 사람들을 東夷라고 불렀다. 
 
사실 동이는 꼭 대한민국 사람들만을 뜻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옛 사서를 보면 중국은 자신들을 華(화) 또는 夏(하)로 불렀고,
주위에 있는 민족은 동이, 동호, 흉노, 북적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동이는 만주 한반도 계열로 - 예맥 (고우리, 부여, 고구려, 백제)과 숙신 (말갈, 물길, 여진),
                                      왜 (일본),  
동호는 몽골 계열로    - 선비, 오환, 거란, 몽고
흉노는 훈족 계열로    - 흉노, 갈족인데,
이들은 모두 고조선 영역에 해당한다.
 
그외 중국인이 오랑캐라 부른 이민족은
티베트 계열로 - 강족, 저족이 있고,
아이누 계열로 - 읍루가 있는데, 
중국인들은 역사 이래 위 민족들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였다.
 
한편, 오늘 날 중국대륙에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없어졌는데,
정작 중국인들이 세운 나라 중에는 주-한-진(사마염)-송-명이 고작이고,
나머지는 동이, 동호들이 세운 나라가 대부분 이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도 사실 東夷인 여진에서 세운 나라이다.
즉, 중국의 漢족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소리를 치더라도, 오늘 날 중국의 영토는 동이의 여진족이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殷曰夷 周曰華 又云 東曰夷 西曰夏  
"은(殷)나라는 동이족이고, 주(周)나라는 화족이다.

또 말해서, 동쪽에는 동이가, 서쪽에는 하가 있다."
 
여기에서 은나라와 주나라가 나오는데,
위 은왕조를 우리 송씨들은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마천은 분명히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로 동쪽에 있고, 하나라는 중국의 나라로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이야 동이족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있고, 하족 중국이 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옛날 상고시대에는 대륙의 가운데를 기점으로, 동쪽에는 동이족이 있었고, 서쪽에는 하족이 있었다.
 
여기서 잠시 한국과 중국의 상고시대를 살펴보자.
<사기>에 의하면 대륙의 상고시대에 하-은-주 왕조가 있었다.
 
하왕조 (기원전 2070 - 기원전 1600년)  - 중국인이 세운 나라
은왕조 (기원전 1600 - 기원전 1046년)  - 고조선이 세운 나라 
주왕조 (기원전 1046 -  기원전 771년)  - 중국인이 세운 나라
 
중국 대륙에 있던 상고시대 3대왕조에 어떤 이유로 고조선의 나라가 있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중국인 인데, 중국인 스스로가 자기들의 역사책을 쓰며, 은왕조는 동이가 세운 나라이고, 주왕조는 화족이 세운 나라이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앞에서 은왕조를 우리 송씨들은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유는 위 은왕조가 우리 송씨들의 직계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송씨는  중국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이 난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신라 경덕왕 시절 동방에 귀화 하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고 하실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 이다.
 
심지어 어느 집안 대종회 홈페이지에는 송씨의 기원을 소개하며, 자신이 얼마전 중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중국 육군사관학교 출신 관광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한국의 송씨는 당나라 태종 때,  당나라 장군 소정방 이하 10여명이 장군이 신라와 함께 백제를 정벌 하였으며, 당나라 10여명의 장군 중에 송씨 장군이 있었고, 그가 백제에 오랫 동안 머물며 한국 송씨의 기원이 되었다는 내용을 들었다며, 그 내용을 대종회 홈페이지의 송씨 기원설에 써놓은 집안도 있다.
 
삼국사기에도 나오지 않는 신라에 귀화한 당나라 호부상서 송주은,
한편 호부상서 이면 오늘 날 재무부 장관인데, 정작 그 나라 사서인 신당서 구당서에는 단 한차례 이름도 없는 호부상서 송주은 이것은 보나마나 잘못 전래된 이야기 이다.
옛날 어르신 중에 무조건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최고인 줄 아는 일명 중국 사대주의 근성이 낳은 이나라 망조 이지요.
그런데, 송주은 귀화설도 모자라, 이젠 일개 중국 관광가이드 한마디 때문에, 송씨의 시조가 좌지우지 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내 그글을 읽고 정말 눈물이 다 나더이다.
이 대한민국에 있는 송씨들은 얼마나 못나 터진 종자 이길래,
일개 중국 관광가이드 말 한마디에 시조가 뒤바뀌고, 더욱이 이름도 모르는 당나라 소정방을 따라온 10명의 장군 중 무명 송씨장군이 되어야 합니까.
아!~ 참 안타까운 일 입니다.
 
그렇게 중국이 좋습니까?
호부상서이면 끝발 날리는 벼슬인데, 정작 그 나라 사서에는 이름이 한 번도 않나오는 송주은 그것도 모자라.. 이젠, 이름도 모르는 당나라 장군 입니다.
 
그 중국 관광 가이드는 바다건너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 송씨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정작 삼국사기에 이름도 없고, 중국 신, 구당서에 이름도 없는 소정방을 따라간 10여명의 무명 장군을 다 알고 있다는 것 인지.
 
이것은 보나 마나 뻔 한다.
중국 정부에서  그 관광가이드에게 한국 손님들이 오면, 한국의 성씨들은 모두 중국 귀족 출신이다..라는 내용을 유포하라고 교육 시킨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왜 관광가이드에게 그런 교육을 시킬까?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프로젝트 이다.
중국은 고대 한국의 역사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니고, 중국 변방의 역사이다며 중국 역사로 편입 시켰다.
이런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한국인의 반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한국성씨는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왔다... 라는 유언비어를 한국인게 퍼뜨리는 것 이다.
 
오늘 날 한국의 유명 집안이 거의다 중국에서 귀화한 귀족들이다면...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 출신 귀족들이 한반도 토착인들을 지배 하였고, 오늘 날까지 중국 출신 성씨들이 한국에서 명문 집안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중국은 상전이요, 조선은 천하의 쌍놈들이 된다...

그리고, 한국의 명문 집안 조상들은 모두 중국에서 건너간 사람들 이라고 해야...
대한민국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그럼 동북공정프로젝트의 걸림돌이 없어진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중국의 국력이 계속 커지면
조만간, 대한민국은 본래 중국의 속국 이었으므로, 중국이 다스려야 한다... 라는 논리 펴게 될 것 이다.
이 나라가 중국에 병합되고, 대한민국이 사라져 韓城으로 바뀌어, 중국의 일개 성으로 떨어져야만 정신들 차릴 것인지...
 
만약, 당나라 호부상서 송주은 귀화설이 정사이고, 당나라 소정방을 따라 백제에 건너온 무명 송씨장군이 정말 사실 이다면... 그것은 우리가 역사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는 실제 중국이나 베트남, 일본, 몽골에서 귀화한 성씨들이 있다.
이 성씨들은 사서에도 분명히 확인되고, 그 집안 옛 족보에도 확인된다.
 
그러나, 우리 성씨는 어디를 보아도 중국 성씨가 아닌데.. 중국 성씨로 거짓말 까지 해가며... 우리 시조는 중국에서 귀화 했다고 유포하고 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 시키고,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동조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송주은 귀화설 이 내용이 최근 급속히 퍼져...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는데,
은진송씨 우암 문정공 시열 선생은 자신의 6대조 비석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우리 송씨가 은진 송씨의 족보를 가지게 된 것은 고려 판원사 대원부터 이다..
 
송씨 족보 중에는 가장 먼저 발간 된 여산송씨 족보는
그 시조를 고려 진사 유익으로 모시고, 중시조를 고려말 숙문으로 하고 있다.
 
우리 진천송씨는 신라 대아찬 諱 순공을 시조로 모시나, 그 후 340년간 계보를 잃어버려 고려 인종 장군 諱 인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즉, 옛 조선시대에 쓰여진 어느 송씨 족보를 보더라도, 송주은 귀화설을 없다.
다만,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보면 신라 경순왕과 고려 태조 시절에 송함홍이 보이고,
그 이후로도 고려조에 몇 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 송씨는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 되었고, 그 계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1970년 부터 <송씨통사>책을 펴내며 당나라 호부상서 송주은이 신라에 귀화했다고 하고있다.
이런 현상은 꼭 우리 송씨 뿐 아니다,,,
심지어 어느 성씨들를 보면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고려 태조에게 성씨를 하사 받았다는 내용이 고려사에서 분명히 확인되는데, 그런 집안 조차 우리 시조는 중국에서 귀화 했습니다... 라고 멍청한 소리를 하는 집안도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프로젝트가 성공한 정책이다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한국인 스스로가 모두 자기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 토착민들을 지배하고, 오랫 동안 귀족으로 명문을 이어왔으니, 대한민국은 옛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따라서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중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대한민국은 중국이 앞으로 회복해야할 영토라고 은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고대사 역사 뿐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이 살고있는 한반도까지 자신들이 회복해야할 영토이다고 중학교 교과서에 올리고 가르쳐 왔다.
정신들 차리셔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만 하더라도,
송주은 귀화설은 없었다.
 
저의 조부께서 1945년 8 15광복을 앞두고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셨는데,
그때 제 부친의 연세가 6세 이었다. 그리고, 저의 외증조부가 문화유씨 인데, 그 당시 전북 익산 함열쪽에서 만석꾼 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농토만 많은 것이 아니고, 그 당시 큰 상단을 꾸려서 만주과 일본까지 무역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제 고모부가 삭녕 최씨인데, 외증조부 댁에서 상단 총 책임자 역활을 하셨고, 외증조부께서 자신의 사위되는 저의 조부께 고모부를 소개 시키고 고모님과 중매를 해 주셨다.
 
한편 우리 고모부님이 상당히 유능한 분이셨다. 학벌은 보통학교를 졸업 하셨는데, 한자와 계산에 능숙하여, 동네에서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중학생들의 가정교사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고모부님이 우리 조부님을 따라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 송씨에 대하여 잘 알고 계셨다.
8.15 광복을 맞이할 쯤, 전국의 송씨들이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모인적이 있었고, 그 자리에 고모부님이 우리 조부님을 따라 함께 가셨던 모양이다.
여산이면 익산, 은진 등과 가까운 지역으로 그 당시에는 자주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만 하더라도 송씨들 사이에는 송씨의 기원이 은나라 탕왕이요, 송나라 미자이다 라는 이야기가 만연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의 송씨는 모두 한 형제다는 <송씨통사>를 만들며 위 내용을 수록하자고 하였는데, 몇 몇 유생출신들이, 천자의 나라는 중국이요, 조선은 황제를 모시는 나라인데, 신하국의 자손으로 어찌 감히 족보에 황제의 후손이라 쓸수 있느냐며 불경스럽다고 난리가 났다는 것 이다.
은나라의 황제요, 송나라 미자의 후손이다는 내용은 앞으로 사용하지 않고,
어차피 중국의 송씨도 우리와 은왕실의 후손이나 다름 없으니,
중국의 어느 높은 벼슬을 한 분이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이다.
이것이 바로 당나라 호부상서 宋柱殷 또는 宋珠殷 (은나라 기둥, 은나라 구슬) 이다.   
한편, 이를 지켜본 다른 집안의 유생출신들이 역시 송씨들은 군신의 예를 지키는 양반 이다고 칭찬 하였다고 한다.
참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그 놈의 명나라가 뭐길래... 자기 족보에 자기 조상 이름도 제대로 못 쓴다는 것인지...
이렇게 하게 은나라의 기둥, 은나라의 구슬의 뜻을 지닌 송주은이 한국송씨의 조상이다는 <송씨통사>가 탄생하는 순간인데,   
진천송씨와 여산송씨 사이에 큰 집 자리 다툼이 생겼다.
진천송씨는 시조가 신라 대아찬공 부터 이고, 여산송씨는 고려 중엽 진사 유익부터 이다.
또한, 고려사에 기록된 이름을 보면 진천송씨가 여산송씨보다 숫자가 몇 명 더 많다.
그래서 진천송씨는 진천이 큰집이다... 라고 하였는데,
반면 여산송씨 인구는 진천 송씨의 10배가 넘으며, 은진송씨는 진천송씨 보다 8배 넘는다.
여산과 은진은 조선시대 대과 급제자 숫자도 진천 보다 2배 더 많다.
그래서, 여산과 은진송씨는 진천송씨가 큰집이 될수없고, 본래 여산송씨 분파 인데, 진천에 있는 먼 친척의 후손이 끊어지자, 여산송씨 송분의 장남 진이 양자를 갔고, 그분이 진천송씨 족보에는 총랑공 전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 싸움에, 진천송씨 사람들이 얼마나 드세게 나오는지, 여산송씨와 은진송씨가 <송씨통사> 책 발간을 포기했다는 것 이다.
 
이로인해 지금도 여산송씨와 은진송씨 사람들이 진천송씨만 보면, <어! 진천? 그런 송씨도 다 있었나? 송씨라고 같은 송씨가 아니지...>라고 은연중에 무시하는 소리를 하는 것 이다.
 
이것이 대략 1945년 전후에 전북 여산면에서 여산송씨, 은진송씨, 서산송씨, 진천송씨 (완주, 익산, 김제)들 사이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 이다.
이것은 제가 저의 고모부님께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위 내용을 보더라도... 1945년 이 무렵만 하더라도 우리 송씨들은 은황실 탕황제와 송왕실 미자를 우리 선조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틀립없다.
그런데, 조선의 신하국으로 감히 황제의 자손을 칭할수 없다며,,,
송주은 귀화설을 만들었던 것 이다.
 
위 내용은 하늘에 두고 맹세 하건데, 사실 입니다.
그 당시 살았던 어르신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또는 살았다 하더라도 연세가 많아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결론 맺습니다.
 
상고시대 은나라와 춘추전국시대 송나라는 최고 4000년전, 최소 2300년전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위 왕실이 우리 송씨 직계 조상이라고 할수 있을까 의문이다.
근거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인 사마천의 <사기>에 분명히
殷曰夷 周曰華 又云 東曰夷 西曰夏  라고 하여
"은(殷)나라는 동이족이고, 주(周)나라는 화족이다.

또 말해서, 동쪽에는 동이가, 서쪽에는 하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미자는 은왕실의 왕족인데, 주나라 무왕이 미자에게 은왕실의 종묘와 사직을 잇도록 하며, 나라 이름을 宋이라 하고, 미자를 왕으로 책봉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太史公曰:餘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北殷氏、目夷氏。孔子曰,殷路車為善,而色尚白。
簡狄吞乙,是為殷祖。玄王啟商,伊尹負俎。上開三面,下獻九主。旋師泰卷,繼相臣扈。遷囂圮耿,不常厥土。武乙無道,禍因射天。帝辛淫亂,拒諫賊賢。九侯見醢,砲格興焉。黃鉞斯杖,白旗是懸。哀哉瓊室,殷祀用遷!

태사공이 말하기를
나는 [송頌 : 상송 (商頌)등 시경의 편명)에 의거하여 설의 사적을 기술하고, 성탕 이래로는 [상서]와 [시경]에서 채택했다. 설은 성이 자씨 (子氏) 였으나, 그 후손들이 나누어 봉해져 나라 이름을 성으로 삼았으므로, 은씨 (殷氏), 내씨 (來氏), 송씨 (宋氏), 공동씨 (空桐氏), 치씨 (稚氏), 북은씨 (北殷氏), 목이씨 (目夷氏)가 있게 되었다.
공자는 '은나라 수레가 가장 훌륭하다'라고 말했으며, 색깔은 흰색을 숭상했다.
 
 
설은 子氏라고 하였는데, 성탕의 14대조 이며, 성탕이 하나라 걸왕을 쫓아내고 상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신 분이다. 그리고, 상나라가 훗날 주나라 무왕에 의해 패하는데, 이때 미자가 송나라 왕이 되어, 상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이어간다.
한편, 사기에도 탕왕과 미자는 모두 子씨로 기록하고 있으나, 후편에 태사공 (사마천의 관직 : 태사령)은, 그 후손들이 나라 이름으로 성씨를 쓰거나 여러 성씨로 분가 했다며, 송씨 성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송씨는 중국의 성씨가 아닙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보이듯, 고조선의 성씨이며, 우리 송씨는 본래 고조선의 상나라 황제의 후손으로 500년 동안 대륙의 중심을 지배 하였고, 중국에게 패한 후에도 송나라를 세워 700년 동안 종묘와 사직을 지켜낸 왕실의 집안 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하나, 그 나라 사서에 이름이 한번도 없고,
신라에 귀화 했다고 하나 삼국사기에는 한 차례 이름도 없는 송주은이 우리 한국 송씨의 시조가 되어야 하며,
한편, 일개 하찮은 중국 관광 가이드의 한마디 때문에 우리 시조가 당나라에서 소정방을 따라 백제로 건너온 이름도 모르는 장군이 되어야 하나요?
 
우리 동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 우리 송씨는 본래 동이족 고조선의 후예 이며, 상나라를 건국하고, 대륙의 중심을 지배하고 천하를 호령 하였던 천자의 후손이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송씨가 중국의 성씨이며, 더욱이 사서에도 보이질 않는 송주은과 이름도 모르는 무명 송씨 장군이 시조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송씨통사 다시 써야 합니다.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프로젝트로 우리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고, 더욱이 대한민국은 본래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니, 대한민국은 중국이 회복해야할 땅 이다며,,, 은밀한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사실도 아닌 엉터리를 유포하며,
우리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와 오랫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며, 중국인에 의해 명문 가문이 되었다고,,, 중국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동조할 필요가 없는 것 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상나라 황실 계보와 송나라 왕실 계보를 올리겠습니다.
위 분들이 우리 직계 조상 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시조는
위선으로 가득찬 중국 당나라 호부상서 송주은이 아니고,
이 나라 백제와 고구려를 짓밟으러 한반도로 건너온 이름도 모르는 당나라 조무래기가 아닙니다.
 
동북공정프로젝트의 함정에 빠져, 나라 팔아먹는 거짓 시조 귀화설 당장에 뜯어 고쳐야 합니다.
 
우리 송씨는 자랑스러운 고조선의 원 뿌리요.

고조선 황제 후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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