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차례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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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차례의 변천

송병혁 0 3843

  다례(茶禮)와 차례(茶禮)가 한문 글자는 같으나 우리 독음(讀音)이 다르고 그 뜻도 다르다. 고려시대에 유행했다는 오행다례(五行茶禮) 같은 것은 차를 마시는 다도(茶道) 의식이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설날과 추석의 차례는 제례(祭禮)이다.

  실상 우리나라 차례의 역사가 아주 길지는 않다. 시제(時祭)는 일찍이 내려 왔고, 과거에는 설날, 한식, 추석, 동지 같은 사시절(四時節) 시제를 올렸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년에 한 번 선조의 묘소에 가서 묘제(墓祭)를 올리는 걸 흔히들 시제라고 부른다.

  시제에는 절차와 제수(祭需)도 갖추지만, 차례는 축문(祝文)도 없고 단잔(單盞)으로 간략히 한다. 우리 조선시대에 제례(祭禮)의 모델로 삼았던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차례(茶禮)의 예는 없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후대에 발전한 고유의 것일 것도 같다.

  명절을 즐기다보니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부모님 생각이 나서 설날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올리고 간략한 차례를 지냈을 것이다. 제사의 온전한 절차는 생략되고 간략하게 예를 올린다 하여 제사라 하지 않고 다례라고 했던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시제를 겸하는 현상으로 기울고 있다. 한가위 차례 따로 또 시제 따로 하던 걸 추석에 성묘를 겸하여 시제를 시행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말이다. 점점 생략하고 종합하여 줄이다보니 차례와 시제가 하나이 되는 경향이다. 심지어 벌초할 때에 모두 겸하기도 한다.

  나아가서 여러 분상 선조의 산소들을 다 찾아다니기가 번거로워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추석차례 올리듯 시향(時享)을 하는 집도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시조(始祖)나 상계선조의 경우에는 자손이 많고 전통이 보다 더 깊어서 시향으로 해야 하겠지만 작은 문중(小門中)이나 자손이 적은 주손(冑孫)이 편리를 도모할 겸 그렇게 몰아서 한꺼번에 하는 모양이다.

  제상(祭床)의 차림새도 예전보다 점차 작아지고 생략되어 양도 질도 모두 줄어들었다. 제물의 종류도 변하여 외국산에다 피자(pizza)와 코카콜라(Coca Clola)까지 등장했다는 혁신파도 있었다니까. 아, 추석연휴에 놀러가서 호텔방에다 차례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요새 젊은 신파(新派)도 는다는 걸. 제물 대신 꽃다발만 납골당 앞에 놓기도 한다네.

  제수도 전화로 주문하면 곧 바로 세트로 배달해주고 그런 회사들이 관광지 주변에 많이도 생겨나는 것만 보아도 그런 조류(trend)가 커진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더욱이 기발한 것은 제물을 주문할 것조차도 없이 아이패드 스마트폰 같은 전화기기를 상 위에 켜놓고 인터넷으로 떡과 감 대추 영상을 다운받아 진열하는 기발한 사이버(ciber) 제사까지 생겨났다네.

  어차피 많이 차려도 귀신이 먹고 가진 않는다고 믿는 세상이잖아. 영상에 나타난 감과 송편이나, 시장에서 사온 햇과일과 손으로 빚은 떡도 눈으로 현상을 보기는 똑 같겠지, 전화기기에 나타난 영상의 제물과 매한가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일요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교회 가는 대신 집에서 예배를 드린 지가 오래되었다. 영상매체 제사도 뭐 크게 놀랄꺼리 일까마는, 문제는 그런 제사가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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