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은 없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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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은 없어지고

송병혁 0 3334

  환영하지 않거든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떠나가라”는 복음서(福音書)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달가워하지 않는 촌로(村老)를 뒤로 하고 거북고을을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시골길 하나 물어보기도 이제는 어려워라. 고향의 이웃마을이었건만.

  건넌방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은 집에는 사람이 안 보이고, 트럭에 올라탄 사람은 휴대폰에 바빠서 곁을 주지 않누나. 또 다시 지나가는 모터사이클에 방향을 물는다. “옛날 도보로 다니던 지름길은 지금 없어졌니더.”

  숲으로 뒤덮여 산길이 모두 끊어졌다니까. 땔나무를 하지 않는 시골은 산마다 울창하지 않은 곳이 없는 정글이 되어가는 판이다. 어디 예 다니던 산길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도 초가을이면 마을사람들이 날을 잡아서 산길에 덥힌 나무들을 잘라내고 장마에 씻겨간 오솔길을 보수하였다. 이제는 아예 다니는 사람조차 없다니 나무들이 판치는 산에는 길이 아예 없어진 모양이다. 그 뿐이랴.

  시골에도 지금은 모두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었으니 걸어 다닐 이유가 없다. 더구나 산골과 재를 넘을 까닭이 어디에 있나. 이 작은 마을까지 모두 콘크리트로 농로를 포장했고 그리로 차를 타고 다니는 판에. 사람이 다니면 길이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아무도 지나가질 않으면 저절로 길은 또 없어질 뿐이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외딴 집 뒤로 큰 찻길로나 올라가야한다네. 새로 생긴 4차선 고속도로 밑으로 작은 인도(人道)의 굴을 지나자 가을김장 심는 촌로에게 의존했다. “저기 작은 사과밭 지나 오른쪽으로 오르면 찻길이 나오지요.” 개울엔 물이 조금 흐르고 사과나무에는 탐스런 후지(富士)가 주렁주렁 열렸으나 철조망조차 없네. 짓궂게 따먹을 아이들도 이젠 시골에 별로 없겠지만 예처럼 철조망이나 가시 많은 탱자나무를 심어 울타리 칠 필요도 없나보구나.

  길가엔 아기 주먹만 하게 감들이 떨어져 마구 뒹군다. 동부 콩(豇豆) 줄기가 뻗었고, 해바라기며 땅콩 밭 고구마 밭, 골짝 밭들을 지나면서 이슬에 젖어 나아간다. 외딴집 뒤로 시멘트로 포장한 작은 길을 따라 올라서니 일찍 만든 양차선 찻길이 마침내 나오는구나.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지나가 본 적이 있어 눈에 익은 듯했다. 한 시간은 좋이 걸릴 거라던 오토바이 말이 맞을 것 같다. 약간 숨을 몰아쉬면서 운동 삼아 잘 걸어 올라간다. 땀이 살짝 배면서 매일 서울의 뒷산 북악산 말 바위 길보다는 더 멀고 힘들다.

  꼬불꼬불 찻길 따라 꼭대기에 남선면 표지판이 나온다. 넘어가니 이번에는 현내동 가는 표지판이잖아. 아 이 길이면 두어 주간 전에 자형(姊兄)을 잃은 외사촌 누이 네를 갈 수 있겠네? 계획도 없었지만 얼마나 걸릴지도 몰라 생각은 말아 올렸다. 땀을 닦으며 내려오니 구미가 2.7km라고 적혀있었다. 길가에 한 아낙네가 자전거를 옆에 뉘이고서 햇볕 차단을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서 김을 매고 있었다, 대구서 왔다면서 토착민은 많이 모른다네.

  그래도 바로 앞에 몇 집 안 되는 데가 사시나뭇골, 지나내려온 좌측은 새절골이라며 설명해준다. 아 저기가 바로 내 초등학교 동창 최영주의 고향마을이었다. 경찰에서 퇴직하고 저기 제 고향에다 집을 하나 지었다면서 살지는 않는다네. 그 밑이 배일(白日)이다. 사붓골과 지르골은 그 넘어어란다, 모두 귀에 익은 이름들이 아닌가. 옛길은 없어졌어도 넓은 찻길은 다시 생기고, 그래도 목적지로 가는 길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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