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창의 시학운총(詩學韻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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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의 시학운총(詩學韻叢)

송병혁 0 4402


  무더운 오후에 안동 용상(龍上)의 우리 교하공 종중 회관 가까이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 있어 말을 걸었다, “저 넘어 가는 길이 있나요?” 나의 빛 바랜 토속 액센트가 의아하게 하는 모양이다, “어디서 오셨니꾜?” 관등성명 대듯 “샘뜰이 고향인데, 객지에 좀 나가살아서 저 너머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궁금해서입니다.” “관향이 어예 되시는지요?” “아, 진천송갑니더.”

  그제야 자신은 ‘밀양 박가’라면서 조금 마음을 연다. “저 넘에가 감성골이고, 저긴 잿골인데 그리로 넘어가면 안동댐으로 갈 수 있니더.” “아, 감성골이군요.” 어려서부터 귀에 익은 이름이다. 재종조모 한 분이 ‘감성골 할매’로 거기가 친정이셨다.

  관향을 대고 고향 마을을 알고 나니 관계가 좁혀진다, “진천 송씨마 기(基)자 식(植)자 어른을 아시겠네요?” “예, 4종숙이 되시지요.” “대(大)자 식(植)자가 제 왕고모부시더.” 해창(海窓) 선생(基植/ 1878-1949)의 둘째제씨(弟氏)가 아니신가. 이 밀양박씨는 거기까진 모르고 있었다, “대(大)자 식(植)자의 윗대가 기(基)자 식(植)자인 줄로 생각했니더.”

  진보(眞寶)서 안동으로 27년 전에 이사 왔다면서 자기 집에 해창 선생의 문집이 있다는 게 아닌가! 당장 앞세워 그 집으로 갔다. 술을 마셔서 약간 비틀거리면서 길 건너 가까이로 안내했다. 안방의 장 위에서 작은 박스 하나 내리니 그 속에 5권의 책자가 나온다.

  해창 문집이 아니라, 해창 선생이 일찍이 편집(編輯)한 “비점주해 시학운총(批點註解 詩學韻叢)”이었다. 그래도 기뻤다,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으니까. 지나(중국의) 옛 시, 우리나라 역대의 시, 심지어 일본 시까지 뒤에 붙여서 편집한 시 모음집인데 총 7권 중에서 5권만 있었다.

  “2백년은 된 책이지예?”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1권을 펼치면서 대답했다. “해창 선생이 1949년에 작고(作故)하셨으니 백년이 채 안될 것 같습니다.” 편집자의 서문에 해창(基植) 선생의 한문 내용이 앞에 나왔다.

  ‘노는 입에 열불’이라더니 지나가는 말 한 마디가 내가 찾아서 보고 싶었던 우리 문중의 책을 우연히 만나다니! 저녁에 곧바로 대구에 사는 해창의 친손(親孫)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하루 전에 고향 선산에 벌초하고 가는 길에 우정 안동에 내려와 있는 나를 찾아 만나고 갔었다.

  해창의 ‘시학운총’을 우연히 발견했다니 놀라며 반가워했다. 엊그제 해창이 아동의 한문입문 교재로 지은 한문훈몽(漢文訓蒙)의 상권 카피를 받아보고 서로 의논을 했던 차에 더욱 의미가 크게 되었다. 알려진 학자로서 해창의 업적이 큰데 그 저술이 산재하여 우리가 다 입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작은 분량은 해창의 저서가 근년에 소량 출판되었으나 문집이나 그 외의 작품은 그 원본마저 우리가 제대로 다 입수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점차 그 저술이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기대한다. 내용의 깊이와 가치는 충분히 그럴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학계와 우리 진천송씨의 긍지도 된다. 오늘은 우연한 기회에 기쁨의 소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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