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선비

홈 > 게시판 (公告欄)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매미와 선비

송병혁 0 3583

  “거미는 어찌나 가는 실을 토해냈는지 옛날 황제(皇帝) 시대에 눈 밝기로 소문난 이루(離婁)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 슬기롭지 못한 곤충이야 어찌 정묘하게 볼 수가 있었겠는가? 날아서 지나가려다가 갑자기 걸려들어서 날개를 파닥거리나 점점 더 옭힐 뿐이었오(何吐緖之至纖 雖離婁猶不容睛. 矧玆蟲之不慧 豈覘視之能精? 將飛過而忽罥 翅拍拍而兪嬰).”

  맹자(孟子)를 익히 읽었을 백운거사(白雲居士 李奎報/ 1168-1241)가 이루(離婁)까지 언급하였다. 맹자 전체 내용이 모두 7장으로 분류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루장(離婁章)이다. 그 장의 첫머리의 글자를 따서 후에 붙인 장명(章名)이 되었다. 그 이루는 전설적인 고대의 이야기로 신화시대의 황제(皇帝) 때에 살았던 눈 밝기로 이름난 자였다네. 그는 100보 밖에서 새의 가을깃털[秋毫]을 식별할 수가 있었다니까.

  그 맹자의 대목은 이렇다. “이루의 눈 밝음과 공수자의 재주 있는 솜씨로도 직각자와 곱자가 아니라면 정사각형이나 원을 능히 만들 수가 없다(離婁之明과 公輸子之巧로도 不以規矩면 不能成方員이요).”

  자기 욕심에 빠져 덫에 걸리는 거야 제 탓이지만 맑고 깨끗하게 노래 부르고 이슬만 먹고 산다고 생각한 매미는 다만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올무에 걸렸다는 것이다. “저 윙윙대는 금파리들이야 온갖 냄새와 비린내를 쫓아다니고, 꽃을 탐하여 미친 듯 가벼이 날아다니는 나비들이야 바람 따라 이리저리 쉬지 못하다가 재난을 본들 누구를 탓하겠는가(彼營營之靑蠅 紛逐臭而慕腥, 蝶貪芳以輕狂 隨風上下以不停 雖見罹而何尤)!”

  파리는 본성이 비리고 더러운 냄새를 쫓아다니니 그 못된 욕망 때문에 거미줄에 걸린들 마땅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달콤한 꽃을 쫓아다니는 나비들도 제 색욕(色慾)에 미쳐서 날뛰다가 거미 밥이 된다한들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허물은 추구하는 욕망에 원인이 있는데, 매미 너는 오로지 다른 미물들과 다툼이라곤 없지 않나, 어쩌다가 이에 걸려들었단 말이냐? 내 너의 속박을 풀어주고 부탁하노니, 큰 나무 숲으로 좋이 돌아가서 아름다운 그늘에서 맑고 그윽함을 누리거라(原厥咎本乎有求, 獨汝與物而無競 胡爲遭此拘囚? 解爾之纏縛 囑汝以綢繆, 遡喬林而好去 擇美陰之淸幽).”

“옮겨 다니는 것도 자주는 말지니, 요 그물 치는 곤충이 엿보고 있도다(移不可屢兮, 有此網蟲之窺窬).” “거처도 한 곳에만 오래 머물지는 말아야지, 사마귀가 뒤에서 모사를 부리느니(居不可久兮, 螳螂在後以爾謀).” “거취를 조심 할지어다, 그리하여야 실수가 없으리라(愼爲去就, 然後無尤).”

  공자왈 맹자왈(孔子曰 孟子曰) 백운거사는 매미에게 한바탕 설교를 한다. 청아한 선비가 이 세상 살아가는 바도 이처럼 삼가야 하거든. 나비처럼 색욕에 눈이 멀면 거미줄에 걸리고, 금파리가 더러운 냄새만 쫓아가다가는 욕망의 그물에 걸려서 잡아먹힐 뿐이지만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는 높고 깨끗하게 사는 선비라서 찬양을 받으며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

  매미야 명심하라. 거취를 삼가라. 경거망동(輕擧妄動)하게 촐싹거려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한 곳에만 너무 오래 머물면 그걸 알고서 다른 놈이 또 잡아먹으러 엿본다. 대장부는 무거워야 권위가 서지만 또한 떠날 때는 떠나야 하고,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 군자라고 하지 않았나. 이규보의 이 매미는 청아한 선비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