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명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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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명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송은도 0 3976
 
우리 진천 집안 송씨는 진천백 시조님 7세손 부터 자손이 크게 번창하기 시작하여 오늘 날 전서공파, 낭장공파, 안성공파, 송정공파, 참의공파 (진천백의 9대손)라 하여 5개파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집안을  5개 분파로 나뉘어 파명을 불렀는지 알지 못 한다.
일설에는 1541년 서교공 諱 찬 할아버지께서 신축보를 말들었으니, 혹시 서교공 할아버지 시절부터 5개 파명으로 분류하지 않았냐.. 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신축보는 현재 전래되는 것이 없어 확인이 불가능 하나,

본인은 생각을 좀 다르게 한다.
우리 집안이 5개 파명으로 분류하여 불렀던 것은 족보로 판단하여 볼 때,
1789년 안성공 10代孫 여진공 諱 주세 (안성공파 한산문중)께서 발행한 기유보가 처음이다. 
현존 최고 오래된 1673년 계축보는 5개파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1789년부터 5개 파명을 사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특이한 점이,
족보를 어느 집안에서 주도하여 만들었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 집안 족보는 주로 2개 집안에서 간행 하였는데,
안성공파 회양공 후손 (서천, 인천 검암, 양주 한산, 춘천)과
송정공파 판결사공 후손 (전주 우산)들이 주로 만들었다.
 
먼저 회양공 집안에서 발행한 족보에는 5개 파명이 보이는데,
1789년 기유보의 경우 전서공, 낭장공, 안성공, 안변 (송정)공, 참의공 이라  부르고 있고,
1838년 무술보는 5개 파명을 사용하지 않으나,
1867년 정묘보의 경우 전서공, 낭장공, 안성공, 송정공, 참의공 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기유보는 송정공파를 안변공파로 불렀다.
송정은 諱 우 할아버지의 號 이고, 안변은 諱 우 할아버지의 관직 지명 (함경북도와 접경한 강원도 북쪽지방) 인데, 옛날에는 파명을 할 때 파종조의 관직이나,  지역명을 사용한 듯 하다.
전서, 낭장, 참의는 관직명 이고, 안성, 안변은 지명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본래 송정공파는 파명이 안변공 인데, 훗날 號를 따라서 송정공파로 고치지 않았느냐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기유보에 안변공파라 하였으나, 그 아래 조그만게 송정이라고 함께 쓰여 놓았다. 즉, 송정공파는 송정과 안변을 혼용하여 사용 했음을 알수있다.
 
그리고 회양공 집안에서 쓰여진 족보를 보면 각 세대에 1世, 2世, 3世...를 써놓았다. 물론 다른 집안의 경우도 世를 표기해 놓아서 이는 보편적 현상이다.
서문과 발문 행장문 등을 보면 대체로 안성공 후손들은 계대를 표기하지 않고, 안성공 후손 이라고만 쓰고 있다.
 
또한 참의공을 군수공의 후손으로 하고, 청산 주성 집안 (영동 문중)은 족보에 수록하지 않았다.
 
1915년에 평리공파보 (을묘보)가 있는데, 위 족보는 전서공파에서 발행한 족보로 보인다.
위 족보의 특징은 안성공과 같은 계열의 평리공 이면서도 안성공 집안의 족보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1世, 2世, 3世... 표식이 없고, 한편 5개 파명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군수공 无後, 참의공 上係失傳으로 하며, 청산 주성 (영동 문중)을 下編에 수록 하였다.
1915년 을묘보는 평리공 집안에서 발행한 기유보, 무술보, 정묘보와 족보의 집필과 계보가 많이 다른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발문을 보면 전서공 17世孫 이라 쓰여있다. 
평리공 집안의 족보는 대체로 00 世孫이라는 표현을 하지않고, 안성공 後孫이라고만 쓰고 있는데, 위 족보는 世孫이라 쓰고 있다.
 
위 을묘보가 충남 서천에서 쓰여졌다는 분도 있으나, 발문을 전서공파 집안에서 작성 하였다. 본인은 위 을묘보가 어느 집안에서 쓰여졌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전서공 집안에서 발문을 작성하였으니, 전서공 집안에서 만든 족보로 소개 한다.
  
 
 
한편 송정공파 판결사공 (우산종중) 집안에서 쓰여진 족보를 보면 
5개파명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1673년 계축보, 1799년 기미보, 1859년 후기미보, 1905년 을사보 (송정공파보), 1966년 병오보 (판결사공파보)는 모두 5개 파명을 한곳에도 써놓지 않았고, 각 세대를 구분하는 1世,2世,3世...라는 기표도 없다.
 
다만 서문과 발문 또는 행장문을 보면 충숙공 5代孫, 7代孫, 9代孫 이라고 쓰여있고, 특이한 점이 世孫이라 쓰지않고 代孫이라 쓰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족보에는 1世, 2世, 3世... 이런 표기가 있는데, 어째서 송정공파에서 만든 족보는 이런 표기가 없는지 궁굼한다.
 
안성공파 회양공 집안의 경우 시조 송순공,  1세 인, 2세 원겸, 3세 순, 희 ...  등 世를 써놓아  2007년 정해보와 똑 같이 되어있다.
 
그런데, 송정공파 판결사공 집안의 경우 시조 송순공,  후손 인,  子 원겸...이라 하였고, 世를 써놓지 않았는데, 아마도 시조 대아찬공과 진천백 사이 340년간 계보를 잃어버려 대수를 계산할 수 없으므로, 1世 2世 3世... 표기를 하지 않은 듯 하다.
 
우리 집안은 5개 파명을 언제부터 전서, 낭장, 안성, 송정, 참의 라고 불렀는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다.
다만 송정공파 판결사공 집안에서 만든 족보와 안성공파 회양공 집안에서 만든 족보를 비교하여 보니,
 
판결사공 집안 족보는 5개 파명이 없고, 世라는 표기도 없으며
회양공 집안 족보는 5개 파명이 있고, 世라는 표기가 있는데,
1789년 기유보에 처음으로 전서공파, 낭장공파, 안성공파, 안변(송정)공파, 참의공파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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