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공(松亭公)이 오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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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松亭公)이 오셔서

송병혁 0 3572

  밤이 늦도록 전전반측(輾轉反側) 하다가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들었다. 지난 몇 해 동안 공(公)을 생각하는 때가 많았던 탓도 있겠으나 위대하신 나의 선조께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는 자괴감(自愧感)이 뒤섞였을 것 같다.

  “내게도 후손이 있었던가?” 구름 속에 가린 듯 사모관대를 쓴 옛 노옹(老翁) 한 분이 말씀하셨다. 아, “할아버님의 산소는 어디에 소재(所在)합니까요?” “이미 거기에는 내가 없으니 찾지 않아도 되느니. 내 생졸(生卒)의 때를 네가 알아냈다니 다행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아버님?” 애타게 여쭈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에는 어려움도 많았었지. 그래도 포은(圃隱)과 목은(牧隱) 인재(麟齋) 부자(父子), 특히 내 친구 양촌(陽村 權近) 같은 동지들이 훌륭했느니라. 내 그분들과 널리 교유(交遊)했건만 드러난 그들의 행적에 비할 때 내 후손들은 나를 그렇게 모르느냐?” "한 말씀만 여쭐게요, 할아버님의 행적을 어느 책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자손 된 도리가 무엇이냐? 내게도 후손이 있음을 알게 하라.......”

  공중으로 펄쩍 뛰어 옷자락을 부여잡으려는데 허공은 너무 넓었다. 나는 어느새 현실감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점에서 착각의 현상을 꿈이라고 하는가. 꿈이 현실이기를 애타게 염원한 적이 내게도 있었으니 이런 경우이다. 수십 년을 해오면서 꿈속에서 나는 종종 책을 읽고 설교를 한다. 때로는 너무나 생생하여 현실처럼 착각할 것 같기도 했으니까.

  옛 사람들도 꿈에 나타난 글자를 가지고 시를 쓰고 글을 지었으며, 심지어 불자(佛子)는 알지 못하던 불경(佛經)의 말이 나타나서 그걸로 경구(警句)로 삼았던 이야기를 읽은 적도 있었다. 무엇엔가 골똘히 빠져들거나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그런 의식의 영향이 무의식과 혼재되어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추론을 해봐도 이런 꿈은 소위 계시(啓示)라고 하는 종교적 경험에서 말하듯 객관적으로 메시지를 밖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단지 내가 생각하고 염원하는 바가 평소에 오래 절실하면 흡사한 내용이 두뇌의 메모리와 얽혀서 의식이 잠자는 동안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 같다.

  연전에 족보를 공부하면서부터 발견한 것은 우리 진송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한 순간에 뚜렷한 인물로 사셨던 나의 18대조 송정공(松亭公 愚/ 1353-1422)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시대의 소위 위대했던 분들과 함께 고려와 조선의 조정에서 벼슬하고 활동하신 사실을 확인하고는 역사적 관점에서 공(公)의 사적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종중과 대종회에서조차 족보에 몇 줄 실린 것 말고는 거의 전무(全無)한 상태라서 여간 실망이 크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역사자료에 눈을 돌렸으나 역시 어려웠다. 그나마 조금은 찾아서 기뻤다. 내가 발견한 송정공에 대한 가장 큰 소득이 공의 돌아가신 연월일(年月日)을 확실하게 밝혀냈고, 생년월일(生年月日)도 알아냈던 일이다. 그것을 확인하던 순간에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남의 문집과 역사자료에서 간접적으로 찾은 공의 사적을 약간 더 얻었다. 여전히 옛 서적을 찾아 읽고 있지만 여간 방대하고 힘든 과제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절실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게다가 노년의 길로 접어든 자신의 시간적 제약을 생각하면서 더욱 그래서 강박관념처럼 무의식을 자극하여 꿈으로 나타났나 보다. “공의 후손이 있음을 보여 드려야 하는데 아직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할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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