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탐보다 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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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탐보다 그물을

송병혁 0 2940

실행을 강조하는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 董仲舒傳)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다. 사마천과 함께 가장 중요한 중국 역사가로서 그 둘은 반마(班馬)라 불려온다. 반고와 사마천(司馬遷/ 135-86 BC)의 한 글자씩 따서 붙여 둘을 일컫는 말이다.

동중서(董仲舒/ 176-104 BC)의 고향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형수시(衡水市)에 속한 경현(景縣)의 하거향(河渠鄕이었다. 이는 서한(西漢)의 무제(武帝/ 141-87 BC 재위)인 유철(劉徹)의 책문(策文)에 답하여 올린 표문(表文)에 나온다.

“못의 물고기를 탐내기보다는 집으로 가서 그물을 짜는 게 낫습니다(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이 말은 당시의 속담으로서 임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예증이었다. 유방(劉邦/ 206-195 BC 재위)이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 232-202 BC)를 이기고 세운 한나라가 건국한 지 그 때 70년 정도다.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기 위하여 무제는 널리 능력 있는 인재들에게서 아이디어와 슬기를 배우기를 원했다. 이에 동중서가 뚜렷한 유교적 입장에서 논리정연하게 써 올린 표문이 우리나라에까지 오랫동안 널리 읽혀지고 교훈이 되어왔다.

시호(諡號)를 세종(世宗)이라고도 하는 무제(武帝)가, 흔히 한무제(漢武帝)로 통한다, 신하들에게 책문(策問)을 내려서 역사에 밝히 비추어 통치자의 이치를 명확히 써 올리라고 하명했다. 지금의 연구논문이나 대학의 텀페이퍼(term pater)를 쓰도록 질문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에 동중서와 무제가 여러 차례 표문과 책문을 주고받는 내용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표문(表文)은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고 책문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글을 지칭한다.

임금이 깊이 심려하는 일을 연못가에서 물속의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비유하면서 그걸 탐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으로 가서 찬찬히 그물을 짜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는 말이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개혁(改革)이라고 제안했다. 현대 경영학적 용어로 하자면 변화(change)와 같은 것이다. 달라지지 않고는 새로워질 수가 없으며 구각(舊殼)을 깨지 않고서야 어찌 성장할 수가 있겠는가. 개혁하지 않고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가 없다는 것이 이 표문의 논지(論旨)다.

어디서부터 먼저 개혁해야 하는가? 임금은 그 실속 있는 성과를 위해서 실행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동중서의 구체적 제안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의 도리를 임금이 먼저 갈고 닦으라고 권한다. 그러면 하늘의 복을 받고 귀신도 보살펴줄 것이며, 그 덕망이 외국으로까지 펴져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중서는 공자와 주자(朱子)를 잇는 중간적 인물로 유학(儒學)을 정치철학으로 삼도록 한(漢)나라에 크게 기여를 했다. 그래서 우리 조선시대에도 동중서를 많이 알고 기억했다. 한나라 초기에 유학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태학(太學)의 설립을 그가 주장했고, 온갖 제자백가의 인물들을 물리치고 유학의 지침으로 정치적 인재를 뽑도록 촉구했다.

그래서 그 현량삼책(賢良三策)이라는 정책 건의는 널리 학문과 덕망이 뛰어난 인재들을 거두어들이도록 무제에게 제안해서 훌륭한 인물들을 모으게 했다. 그의 정치철학은 지금까지 언급되어지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등으로 동양정치사상에 오래 영향력을 미쳤고 후학을 널리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으로 조선 중종(中宗/ 1506-1544 재위) 때에는 덕망이 높고 경학(經學)에 밝은 인재를 뽑던 과거로서 현량과(賢良科)를 시도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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